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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여무,허공에 그린세월
작성자크 * *등록일2004-01-30

날짜 / 2004. 2. 12(목) - 2. 13(금) 오후 7시30분
장소 / 국립국악원 예악당
티켓 / R 석 : 30,000 원 / S 석 : 20,000 원 / A 석 : 15,000 원
주최 / (주)크림스 커뮤니케이션스, 축제의 땅, 공연예술기획 이일공
주관 / (주)크림스 아트매니지먼트, 축제의 땅
후원 / 문화관광부, 서울특별시, CID국제무용협회,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예술방송국.com

※ 티켓예매 http://ticket.creamart.com

女舞, 허공에 그린 세월
돌이켜보니 生, 표기 못할 문자를 허공에 그리며 빈 몸으로 지새운 세월이었네.


보고픔도 극심한 허기의 일종,
그 기갈을 달랠 ‘큰판’이 선다.
2002년 男舞에 이어, 2004년엔 女舞다.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
장금도의 ‘민살풀이춤’
강선영의 ‘승무’
최희선의 ‘달구벌입춤’
권명화의 ‘살풀이춤’
김금화의 ‘거상춤’
한동희의 ‘나비춤’

취재문의 : 011-388-9666(진옥섭) /

1. 판을 올리며

2002년 9월,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에서
그간 춤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던 많은 춤들이 선보여지며
새로운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4년 2월, ‘여무, 허공에 그린 세월’에서
세월을 삭혀 만든 감동의 춤이
전통춤의 지평을 넓히며 가시권으로 다가옵니다.

전통예술에 있어서 20세기는 파괴와 복구가 혼존하는 시대였습니다. 일제의 탄압과 해방 후 외래문화의 범람, 전쟁과 폐허, 그 세월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가던 전통예술은 1964년 시작된 문화재보호법을 중심으로 그나마 제 모습을 갖추려고 안간힘을 쓴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그늘이 있었습니다. 몇 종의 전통예술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에 안심하고 있는 우리의 안일함입니다. 물론 지금의 새로운 세기에도 우를 범하기는 만찬가지입니다.

구한말 러시아 대장성은 “한국 길의 불완전성은 지구상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 했습니다. 대륙과 섬나라의 침공에 불편한 길은 일종의 병법이었던 것입니다. 그 불편한 길이 이룬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각 고을마다 옹골차게 박혀있는 독특한 예술입니다. 학술구분으로도 좌도와 우도, 동편과 서편으로, 심지어 같은 지역이라도 ‘또랑’ 하나만 건너도 가락이 다를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 다양한 토속성이 전통예술의 든든한 기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예술마저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된 체 억지로 꾸며내기에는 불가능한 분량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춤의 경우도 형편이 마찬가지입니다. ‘승무’나 ‘살풀이’ 등 한 두 종의 유파가 전통춤의 본류로 우뚝 서고 그 외의 유파들은 전승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실날같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춤과 그것을 추는 춤꾼들도 문화재라는 ‘실속 있는’ 유파로 계보를 바꾸는 경우 마저 허다하니, 다시는 꾸며질 수 없는 유일무이한 춤들이 안타깝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물론 전통춤에서 토속성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풍부한 예술적 단서를 잃지 않고 충분한 확보하는 것, 그것이 전통춤 발전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이 공연의 의도요 주제가 되는 대목입니다. 허나 이미 이승의 담장을 넘은 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짜’하던 명성도 때가 너무 늦은 지라, 거동 또한 불편하여 삼고초려의 발품으로 심사숙고의 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출연하는 일곱 분의 춤꾼은 평균 나이가 칠십 중반이시고 대부분 기녀, 무녀, 승려로 남다른 일생을 살아오신 분입니다. 특히 기녀와 무녀라면 일생을 손가락질의 끝에서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승려의 삶이나 무용가의 삶은 혹독한 고행과 수련을 요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즉 이분들의 춤은 세월을 삭혀 만든 춤이 될 것입니다. 그 세월이 다 찬 분들이 한자리에 만나니 제목을 ‘여무, 허공에 그린 세월’이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전통춤이란 숨쉬는 이치에 따라 조화로운 몸놀림으로 허공과 세월에 새기는 문자란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평균 칠십 중반이라니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저 의미성에 치중하여 원로들이 나오는 장수만세의 무대가 될지 모른다는 오해입니다. 물론 행장을 차리고 나서기가 쉽지 않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춤을 품고 사신 분들입니다. 일단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에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디딜 곳을 골라 어르다 붙이는 엇박, 장단마디에 착 대어 올리는 돋음, 성음의 이치를 제대로 알아 그 장단의 골짜기를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춤. 관록이니 연륜이니 하는 그 흔한 말이 정녕 빛을 발하여, 필시 단산의 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 속을 넘나드는 풍경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판을 올린 이들

주최 / (주)크림스 커뮤니케이션스, 축제의 땅, 공연예술기획 이일공
주관 / (주)크림스 아트매니지먼트, 축제의 땅
후원 / 문화관광부 서울특별시 CID국제무용협회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예술방송국.com
기획?연출/진옥섭
사진/ 정범태,박상윤,김형석,김상택
디자인/김정규 성해경(Design Feel)
웹디자인/ 한덕희, 윤정훈
홍보/ 정은영, 최현주
진행/최진주, 이경란, 이유정



기획 연출 :
진옥섭 (전통예술연출, 무용평론가)은 대숲과 대바람 소리가 가득한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극단에서 연극 포스타를 붙이며 문화예술에 입문하였다. 이때 배운 탈춤에 흥미를 느껴 파고들다 무용과 전통을 만났고 그 깊이에 빠져들어 연극을 잊고 전통과 무용에 몰두하였다. 전국 춤을 기행하면서 ‘춤터 새마루’를 만들어 활동하였고 89년 ‘북치고 장구치고’저술, 93년 객석예음문화상 무용평론부문을 수상하면서 무용평론도 겸한다. 서울 놀이 마당의 상임연출 서울 두레극장의 극장장, KBS-굿모닝코리아 PD를 했다. 현재 전통 예술전문기획실 ‘축제의 땅’을 만들어 이 땅의 전통예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엮어 내고 있다.

3. 레퍼토리 소개

하나, 권명화의 박지홍류 ‘살풀이춤’
살풀이춤은 하얀 명주수건을 들고 추는 춤으로, ‘살풀이’장단이라는 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살풀이장단이 무속에서 연유되었기에 원초적으로는 굿판에서 즉흥적으로 추어진 허튼춤이라 할 수 있는데, 점차 기녀(妓女)나 창우(창(唱優)들의 레퍼토리로 넘어가 예술성이 가미되면서 발전했다. 대개 법무로 평가되는 승무를 떼고 나면 자연스런 즉흥무를 추게 되는 데, 이러한 즉흥춤들이 수건을 들고 정중동(靜中動)의 움직임에 감고 푸는 미감을 부여하며 발전하며 오늘 살풀이춤에 이른 것이다. 199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어 보다 전형적인 전승물이 되었는데, 이번 무대에 오르는 춤은 박지홍류로 대구의 권명화 선생이 추는 춤으로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어있다.

둘, 장금도의 ‘민살풀이춤’
민살풀이춤은 보통 살풀이춤이 수건을 들고 춤을 춘다는 데에 대하여 수건을 들지 않는 맨손으로 춘다하여 ‘민짜’를 붙여 ‘민살풀이춤’이라 한다. 현재 이러한 춤을 보통 ‘입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군산의 장금도 선생이 추는 춤은 스스로 살풀이춤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안목있는 관객들은 선생의 탁월한 춤에 ‘민살풀이춤’이란 이름으로 따로 부르며 갈래를 나누어 생각하고 있다. 장단의 흐름은 살풀이장단, 자진모리 장단 다시 살풀이장단으로 이어져 살풀이춤과 동일한데, 가끔 흥이 나면 동살풀이장단까지 가미해 ‘동살풀이 춤’으로 불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민살풀이 춤꾼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장금도 선생에 의해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다.

셋, 강선영의 ‘승무’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독무(獨舞)이지만 불가가 아닌 기방을 통하여 전승되었다. 한국춤의 이상인 정중동(靜中動)이 두드러지며 춤사위에 한국춤의 중요한 무법이 모두 담겨있어 법무(法舞)라고 일컫는다. 일제강점기 한성준(韓成俊)의 노력으로 한층 예술적으로 다듬어졌다. 현재 승무는 한성준을 잇는 손녀 한영숙이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 받았고 후에 이매방의 호남류가 지정 받았다. 이번 무대에 오르는 승무는 현재 태평무의 예능보유자로 있는 강선영 선생이 추는 승무로 한성준에게 직접 춤을 배운 일 세대 춤꾼답게 옛멋을 전한다. 흰 바지에 대님을 메고 무대에 나서는 옛 그대로의 재현, 강선영의 승무는 이번 무대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넷, 최희선의 ‘달구벌 입춤’
달구벌이란 대구의 옛 이름으로 대구의 전통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박지홍류의 춤을 최희선이 춤추면서 작명되었다. 입춤은 서서 춘다는 의미에서 입(立)춤이라 하고 춤을 배울 때 첫 발을 떼는 춤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점차 익어 입춤이야 말로 가장 늦게 까지 출 수 있고 춤꾼의 멋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춤이다. 최희선의 입춤은 타악에 호적 시나위에 맞추어 굿거리장단, 자진모리장단, 다시 굿거리장단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춤의 중간에 소매에서 작은 수건을 꺼내어 춤을 추다 그 수건으로 허리를 동여매고 소고춤을 추는 전형적인 교방형의 춤이다. 그리고 오늘날 살풀이 수건으로 양식화되는 중간단계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다섯,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
굿거리춤을 추면서 자진모리 대목에 소고춤을 엮어서 추는 전형적인 기방형의 춤으로 진주의 명무 김수악 선생이 추는 춤이다. 굿거리춤에 옛날 예능을 관장했던 교방(敎坊)이란 관청의 이름을 보태어 ‘교방굿거리춤’이라 작명했다. 굿거리장단, 자진모리장단, 다시 굿거리장단으로 이어지며 시나위의 연주 위에 펼쳐지는데, 가무악의 달인인 김수악 선생이 오르면 춤판이 달아오른다. 80년대 명무전에 이후 여러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면서 김수악 하면 의례 ‘교방굿거리춤’하며 점차 굳어지게 되었고 1967년 ‘진주검무’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이 춤이 점차 더 알려지게 되어 1997년 1월 경남무형문화재로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예능보유자로 한번 더 지정되었다.

여섯, 김금화의 ‘거상춤’
황해도굿 중 큰 거리에 해당하는 칠성제석거리에서 추어지는 춤의 하나이다. 제석은 원래 불교의 신인데, 고려시대에 호국불교로 이 제석이 섬겨지다 훗날 무속화 하여 오늘에 이르니 참으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굿 중에서 가장 큰 거리에 해당된다. 당연히 춤이 많은데, 그중 거상춤은 느린 거상악에 장삼을 끓어 올리며 사방을 배례 하는 위엄 있는 동작에서 점차 빨라지며 도무(跳舞)를 하고 물동이 위에 올라타는 ‘용궁 타는 춤’까지 연결된다. 춤을 추는 김금화 만신은 황해도 출신으로 월남하여 황해도굿의 예술성을 일반에 알린 만신인데, 특히 춤사위가 좋아 명무전에 몇 차례 오른 적이 있고 그중 거상춤의 명성이 높다.

일곱, 한동희의 ‘나비춤’
불교의식인 재(齋)를 올릴 때는 반드시 범패가 있고 이 범패에는 필히 춤이 따른다. 이 춤을 착복(着服) 또는 작법(作法)이라고 하는데, 나비춤, 바라춤, 법고춤, 타주춤이 있다. 이중 나비춤은 모란꽃과 작약꽃을 들고 마치 나비가 춤을 추듯이 춤을 추는 춤으로서 범음성과 태징에 맞추어 춤을 춘다. 고요하고 지극히 정적인 춤인데, 죄를 참회하고 부처님께 귀의토록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비춤은 불가의 영산재를 통하여 일반에 공개되었으나 홀춤으로 무대 위에서 일반 춤과 같이 공연된 예는 극히 드물다. 이처럼 춤은 일반 감상용의 작품이 아니라 불법의 일환이기에, 한동희 스님은 많은 망설임 끝에 참가하였고 관객은 춤에 담긴 화엄세계를 들여다 볼 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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