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의 제단>-
  • 등록일2003-06-12| 작성자 김 * *

이미숙무용단<불의 제단>- 불을 넘어 새로운 미지의 나락과 오름으로...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 종일 추적이는 2003년 6월 11일 오후 7시에 난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이미숙무용단의 <불의 제단>을 만나고 있었다. 

문밖에선 때~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축구열기로 속내를 졸이는 광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 하다. 

햄버거 하우스에선 인스턴트를 하늘의 맛나인냥 퍼뜨리느라 메케하고 중국집에선 사스를 볶아내느라 분주하고 술집에선 낭만을 위하여를 외치며 연이어 폭탄을 터트리느라 어지럽다. 

어느새 가물가물 잊혀져 가는 이라크전쟁의 포성이 귀에서 멎기도 전에 또 다른 먹이감을 찾아 한반도를 위협하는 세상의 전쟁광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 이 말도 안 되게 우스꽝스러운 시기에 참으로 어이없는 소수의 관객들과 정말로 세상에서 아무런 할 일없는 사람처럼 공연을 보고 있었다. 

몇일 전 전라도 광주에서 무용 공연의 스텝으로 참가하고 온 이에게 물어보니 그 쪽은 전북의 수장이 나랏님을 향해 삭발을 감행하며 삼보일배에 대항하고 있는 시기에 어이없는 관객이 그것도 가장 관객이 적다는 무용공연을 보기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한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다. 

오늘 이미숙무용단의 <불의 제단>을 관람한 우리 역시 모두가 한심한 이들 아닐까...? 하루속히 세상에 반성하고 세상의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자. 진정 그 길만이 이 엉망의 세상에서 유아독존하며 나뿐인 놈이 되어 나쁜 놈이 되는 지름길이다. 

“이 뭐꼬...? <불의 제단>이...” 

안무자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의 세상을 혼돈이라 한다. 불의 제단에 혼돈을 불사르고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안무를 하였다 한다. 

연출자의 말을 빌리자면 ‘불의 제단’의 주된 축은 고통, 환락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라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온다. 하루에도 수없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 혼돈의 시점에 희망을 얘기하다니 참으로 한심한 두 사람이 모여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니... 
그뿐인가 참여하는 무용수, 수많은 스텝들 그리고 정신 나간 관객들까지 합세해서 이미 사라져버린 희망을 노래하다니... 

“희망이 뭐꼬...?”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의 장편소설 ‘희망’은 1936년 에스파냐 내란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국제의용군에 참가한 작자의 체험을 살려서 쓴 르포르타주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에선 총동맹의 지휘자이며 인간적인 커뮤니스트인 마뉘엘, 교회의 인습적인 허위와 타락을 증오하는 가톨릭 신자인 히메네스 대령, 작자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국제공군의 지휘관 마냥 등의 개인적인 고독한 명상과 집단적인 투쟁 사이의 대립이라든지, 행동 속에서 끝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전편을 통해 에스파냐의 민중, 나아가 인류 전체의 희망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작품이다. 

이미숙무용단의 <불의 제단>을 보며 가물가물 기억에서 멀어져 가던 이 작품이 떠오르는 건 무슨 연윤가...? 

오늘의 이 추악한 전쟁에서 불과 희망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문명이 태동되었다면 불은 인간에게 끝없는 욕망과 광기를 선사하고 있는 존재가 된다. 
신으로부터 받은 육체의 나약함을 넘어 몸으로 희망을 노래하니 가련한 여인들의 군무에서 희망이 보인다. 
남인은 힘으로 세상을 부수고 여인은 몸으로 새 생명을 잉태한다. 

오늘 보여준 <불의 제단>은 자랑스러운 40만 인구가 사는 의정부에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11년의 창단역사를 정리하며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으로 여러 면모에서 그 힘이 느껴지기에 희망이 보인다. 
안무와 연출 그리고 여러 스텝들 거기다 사랑스러운 여인들의 가녀린 몸짓에서 디딤과 도듬의 경계를 넘어 솟아오르는 힘에서 혼돈의 불을 넘어 여린 희망을 본다. 

그 여린 희망이 자칫 불의 광폭함에 휩쓸려 나락으로 사그라질까 내심 초조하기도 하다. 

무대의 전체적인 앙상블에도 불구하고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본상에서 좀더 적극적인 혼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세상은 오늘 우리가 <불의 제단>에서 만난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악랄하다. 
또한 전쟁과 가뭄 그리고 이상한 괴질로 우릴 공격하는 바이러스들의 침략은 오늘 보여준 몸짓보다 더 지랄 맞고 광적이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여인들의 몸짓에서 오늘 우리의 처절함이 더욱 깊게 베어난다면 그 아픔의 깊이가 더욱 우릴 전율하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음악과 안무의 각이 서로 조화롭게 하모니를 만들어 우리의 폐부를 찔러주면 안될까... 
참으로 잘 만들어진 영상과 춤사위의 조화로운 안무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구원의 그림자는 꼭 그렇게 신적인 모습으로 거대하게 군림하여야 했을까... 
여인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새 생명이 우릴 구원하는 메시지로 다가왔으면 어떨까... 
돈과 힘으로 상징되는 세상에서 희망의 구원마저 그리 거대하게 우릴 지배하려 한다면 너무 답답하다. 

그만해야지... 혼날라...쩝! 

그렇지만 전체적인 연출의 조화와 안무의 춤사위는 우릴 희망으로 이끌어 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단지 희망이란 메시지가 오늘 우리에게 너무나 요원한 문제이기에 두서없이 주절거렸다. 
혹 마음이 상한다면 용서하시라. 30분 공연에 이만큼 글을 쓸 정도면 공연은 그만큼 성공했다고 보면 된다. <레시프>도 이만큼 안 썼다. 

안무자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이제는 관객이다. 의정부시 40만 시민들의 관심이 그립다”고... 
혹자는 순수문화예술에서 고정관객이 이만명이면 기업화도 가능하다고 한다. 40만 중에서 4만명이 관객이 되는 의정부는 정말 안 되는 건가...? 아니 이만명 만이라도...! 

젠장 순수관객 이천명도 안 되는 의정부에서 뭔 헛소린가...? 

“이 뭐꼬...?” 
“희망이 뭐꼬...?” 
“이천명이 뭐꼬...?” 
“이백명이 뭐꼬...? 

이젠 관객이 그립다. 

다음에 만들어질 이미숙무용단의 또 다른 창작이 벌써 날 희망으로 이끌어 간다. 
사랑스러운 그녀들을 언제 다시 만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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