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컬쳐뉴스]-공연리뷰- 2008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신 상그레>
  • 등록일2008-05-13| 작성자 관리자

[리뷰&칼럼] 만화경을 보다 흠칫 놀란 이유
 

[공연리뷰] 2008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신 상그레>
2008-05-13 오후 3:07:16         

[김해진 _ 공연전문기자] 

<신 상그레>에는 어린시절 처음 만화경 속의 세상을 접했을 때의 감각이 담겨있다.
▲ <신 상그레>에는 어린시절 처음 만화경 속의 세상을 접했을 때의 감각이 담겨있다.

과거, 무대에서 구현되던 기술은 무대 아래 수레 장치이거나 무대 위에 달아 올린 도르래장치였다. 구름이나 하늘을 그린 천으로 천정의 장치들을 가리고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액자 모양의 건축 구조인 프로시니엄 아치(proscenium arch)를 세워 공간을 구획,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기계 위에 몸체를 올린 회전무대, 잭나이프처럼 열리고 접히는 무대, 원근법을 고려한 무대그림에서부터 현대의 영상 사용에 이르기까지 연극의 기술 역시 사람의 생활과 함께 변화해왔다.

이제는 무대에서 영상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만의 특질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칠레 극단 떼아뜨로 시네마(Teatro Cinema)의 <신 상그레(Sin Sangre)>는 2008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시네마 시어터’로 이름 붙여졌다. 작년 같은 축제에서 <헤멜로스>를 선보였던 떼아뜨로 시네마의 <신 상그레>에서는 공연이 끝났을 때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듯 함께 만든 이들의 이름이 올라간다. 한글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어서 각각의 포지션을 읽어낼 수는 없었으나 그 풍경은 일어나 나가려던 관객들을 엉거주춤 서성이게 할 만큼 뚜렷한 데가 있었다. 매끈한 기술에 더해지는 사람들의 이름이랄까.

스크린을 앞과 뒤에 겹으로 세우고 그 사이에 배우들의 공간을 마련했다. 안쪽 스크린에 도로가 투사되면 관객을 향한 바깥 스크린에는 자동차가 투사된다. 그 사이에 위치한 배우들은 운전하는 모양새로 연기를 한다. 티토와 니나가 저마다 지나온 시간을 되불러 기나긴 대화를 나눌 때 그들은 까페 탁자와 함께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돈다. 회전무대가 놓여있는 모양이다. 영화에서 카메라가 인물 주변을 360도 돌면서 정서와 환경을 환기시킨다면, <신 상그레>에서는 배우들이 선 곳을 회전시킨다.

화면을 좌우로 나누어 특정한 인물을 클로즈업하는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왼쪽에서 진행중인 장면이 도드라질 때 오른쪽의 화면이 검게 처리되어 왼쪽 화면에 시선을 모아주는 식이다. 영상으로 처리되는 배경은 어느 순간 각도와 깊이를 달리한다. 복수를 위해 어느 시골집에 들이닥친 세 명의 남자가 로카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을 때 화면에는 집 안 풍경이 드러난다. 로카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용감히 나섰을 때 공간은 각도를 틀어 아들의 방 입구를 주목하게 한다.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총 쏘는 이가 전후좌우로 이동할 때 화면의 내용이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버지의 주문대로 마루 바닥의 쪽문을 열고 지하에 숨게 되는 딸 니나는 마치 끝없이 깊은 물에 홀로 풍덩 빠진 것만 같은 막막한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정서 역시 풍성한 표현력의 영상으로 그려진다. <신 상그레>는 불타는 집과 함께 수면 아래의 풍경을 자주 보여주는데 수면 아래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가 연약하고 음습하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붉고 음침하고 축축한 느낌의 색감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영상과 음악으로 다만 배경만을 조직하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까지도 시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철저히 네모진 스크린 안에서 작품이 운용되기 때문일까. 커다란 극장에서 ‘계획된 시선’에 따라 스크린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 다소 답답하게 여겨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영화기술과 접목된 공연에서 ‘새로움’에 차츰 익숙해지고 지루해져갈 즈음 다시 오감을 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신 상그레>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기술적 운용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정작 내용은 허투루 듣고 있었다. 선악 구도의 필름 느와르 쯤이라 혼자 결정내릴 즈음 “그라시아스(고맙습니다)”와 같은 에스파냐어의 물질감이 넘실대며 관객석 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시골집에 들이닥쳤던 무장 괴한 중 티토는 가장 어렸다. 동료가 자신의 여동생을 스스로 죽일 수밖에 없었던 부조리한 사회. 그 현실을 함께 바꾸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관련자 로카를 살해하는 데 가담했었다. 그러나 계획과는 다르게 로카의 어린 아들을 죽이게 되고 집에 불까지 지르게 되면서 회의에 빠진다. 지하에 숨은 니나를 보았으면서도 소녀를 살리기 위해 못 본 척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영상과 음악으로 배경만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침하고 축축한
느낌의 색감을 최대한 살려 인물들의 내면까지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약사와 백작의 손에 자라 아이들까지 낳고 나이가 들어버린 니나는 살아오며 무장괴한 한명 한명에게 복수해왔다. 마지막에 드디어 티토와 맞닥뜨린 그녀는, 어린 시절 지하에 숨은 자신을 보고서도 그저 무심히 쪽문을 닫아버렸던 그에게 대화하기를 청한다. 저마다 지나온 시간을 되불러 서로에게 저항하면서 동시에 투항하듯 긴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각자가 생각하고 있던 진실은 단편이었음을 깨닫는다. 대화를 통하자 지나온 시간이 비로소 ‘진실’의 한 형태로 구성되어갔다. 이 장면에서 스크린 속 배경은 북적거리는 까페. 문 닫을 시간이 되자 까페는 황망히 비어버린다. 몇 잔의 와인이 주문되었을까. 이제 그만 원하는 일을 처리하라며 울음을 터뜨리는 노인 티토. 니나는 티토와 함께 호텔로 간다. 전쟁, 폭력, 피로 얼룩진 어둠 속에서 니나는 “신 상그레” 즉 “아무런 피도 없이” 그와 함께 섞인다.     

뭐니뭐니해도 <신 상그레>에서 빛을 발하는 기술은 적재적소에 몸을 부려 이야기 구성에 기여하는 사람의 감각이다. 공연을 보고나서 길게 남은 것은 화려한 기술과 더불어 그 표현 방식이 지탱하는 이야기였다. 희한하게도 어릴 적에 장난감 카메라나 만화경을 들여다보다가 이야기가 담긴 풍경을 발견하던 바로 그 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제7회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는 의정부예술의전당 및 의정부 시내 일원에서 오는 25일(일)까지 계속된다. 이 축제는 서구 뮤지컬을 포함해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음악극’을 주제로 한다. 70년의 역사를 가진 동춘아트서커스의 공연, 음악극 <봄의 야상곡-창포 연못의 단란>(일본 극단 TPS),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판소리 만들기 ‘자’), 의정부시무용단 <두드리GO>, 뮤지컬 <싱글즈>등이 기다리고 있으며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보이첵>과 축제 폐막작 아이슬란드 베스투르포트 <보이첵>은 비교해봄직하다.  

<신 상그레>를 선보인 칠레 극단 떼아뜨로 시네마의 진행으로 14일(수)까지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공연제작 워크숍’도 열린다. 아트센터 나비와 함께하는 워크숍으로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다.

아이슬란드 공연예술 환경에서의 ‘공연제작시스템과 유통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국제포럼(25일)도 예정되어 있다. 특히 찾아가는 축제(의정부명물찌개거리, 회룡사), 숲 속의 작은 축제와 통나무집 작은 음악회(직동공원), 각종 체험행사, 야외무대공연 등 의정부 시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들이 꼼꼼해 보인다. 문의 031-828-5841

                                      
[컬쳐뉴스]2008-05-13 오후 3:07:16/김해진 _ 공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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