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뉴스]2007-05-22 오후 5:40:55 /[엄현희 _ 연극평론가]
[연극리뷰]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 <헤멜로스>, 꼼빠냐 떼아뜨로 시네마,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해외작품
우리 연극 전반에서 정확한 목표 설정은 참 귀한 가치다. ‘대중’이란 불특정 다수를 막연히 겨냥한 많은 수의 무대들에선 ‘작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찾기 힘든데, 이 질문의 부재는 견고하지 못한 제작 과정과 이에 따른 작품의 질의 문제를 낳는다. 5월 11일부터 열린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의 개막작 <헤멜로스>(칠레 꼼빠냐 떼아뜨르 시네마 극단/후안 카를로스 사갈 연출)는 ‘지금, 이 시대 연극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놓치지 않기에 주목할 만하다.
연극의 힘을 설득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극 안에서 대략 세 요소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반가면을 착용함으로써 배우의 신체 표현력을 극대화한 점, 상황 ‘제시’의 브레히트적 장면 만들기를 통해 ‘서술’이 아닌 장면의 함축적 의미 전달을 꾀한 점, 영화적 씬 처리로 장면을 연결함으로써 많은 수의 장면을 유연하게 연결한 점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객석의 무대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이 극의 전략적 기술들인데, 제작 기간 2년이란 시간의 공력이 이들의 방법론을 더 견고하게 만든 듯 보인다.
재밌는 것은 이들이 취하는 방법이 사실 새로운 미학적 지평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의 ‘놀라움을 주는 그 무엇이 아니란’ 지점이다. 이 연극의 어법뿐 아니라 전쟁과 인간이란 연극이 던지는 화두 역시 많은 예술작품에서 이미 경험한 친숙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2시간을 지탱하는 힘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일까?
<헤멜로스>에서 인간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힘과 대결한다
<헤멜로스>의 가장 큰 매력은 역설적이게도 ‘새로움’이 지상과제인 지금의 속도전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전통적 가치의 재확인’이라는 지점에서 나온다. 사랑, 신뢰, 정의 등의 기표만 남은 채 부유하는 단어들의 기의 확인 같은 경험 말이다.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 정권 시절을 강력히 은유하는, 쌍둥이와 할머니로 이뤄진 한 가족의 전쟁 경험기란 <헤멜로스>의 서사는 사실 인간성을 파괴하는 힘(폭력)과 인간의 대결이란 굉장히 보편적 서사이다. 그런데 극은 무대에서 끝없이 관계를 주고 받으며 함께 존재하는 ‘두 명’의 인간을 보여줌으로써 결속력으로서 무대 안 폭력을 이겨내는 건강한 씩씩함을 전달한다. 이는 가장 기초적 인간 관계를 향한 본능적 욕구에 대한 자극이자, 내가 견디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은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너의 존재로부터 나온다는 당연하지만 잊혀졌던 발견을 이끌어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헤멜로스>의 극 언어들 역시 인간적 가치의 재발견에 기여한다. 반가면 아래 노출된 세 배우들의 절반의 맨얼굴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표정들은 가면과 어우러져 아이의 천친난만한 웃음부터 세상의 쓴맛을 머금은 냉소적 쓴소에 이르기까지 희망부터 절망 사이의 넓은 진폭 사이를 다채롭게 표현한다. 사람의 다양한 표정들이 섬세하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반가면 아래로 보이는 배우들의 표정
극 상황에 대한 세심한 관찰은 이 연극이 영화적 표현법을 연극을 위해 사용하는 지점의 도움이 크다. <헤멜로스>는 풍차, 건물 따위의 나무로 깍은 작은 오브제들을 통해 쌍둥이의 집부터 시내, 길거리 교회까지 다양한 시공간을 극 안에 흡수하는데, 주목할 것은 이들이 공간의 ‘사실적’ 설득력이란 목표 외에 객석의 시선을 ‘한 점’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거둔다는 점이다. 무대 위 사람의 크기에 비해 훨씬 작게 표현된 저 뒤의 원경들은 원근법의 소실점 기능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어떤 것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끈기 있는 바라봄 역시 ‘새로움’에 목말라 하며 항상 ‘가볍게’ 이동 중인 현대인에게 벌써 꽤 낯설어진 미적 경험인 듯하다. (두 명의 쌍둥이가 마을의 다양한 인간들을 만나는 과정을 담은 전쟁 스케치에 해당하는 이 극의 서사는 일견 소년들의 내적 성장 변화에 비해 너무 많은 사건들이 삽입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확실히 극의 뒷부분 호흡은 좀 늘어졌다)
<헤멜로스>는 밖으로부터의 자극을 통해 안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대를 배반한다는 지점에서 전복적인 해외 연극이다. 그것은 이 극 고유의 ‘스타일’이 다름 아닌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한 언어를 끝없이 찾으려는 노력의 다른 얼굴이라는 점이 증거되기 때문이다.
[컬쳐뉴스]2007-05-22 오후 5:40:55 /[엄현희 _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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