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산책―한태숙] 꿈의 극장
  • 등록일2005-06-15| 작성자 의정부예술의전당

<국민일보>2005년 6월 14일 (화요일)


[문화산책―한태숙] 꿈의 극장 최근 한 달은 공연을 보느라 거의 극장에서 살다시피했다.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초청한 공연들을 비롯해 서울 연극제,국제 현대무용제,그리고 연이은 LG아트센터 작품들을 포함한 놓칠 수 없는 20여편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호사가 없구나’란 생각을 했다. 무대 관계자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자신들의 무대작업뿐 아니라 남이 만든 훌륭한 공연을 보는 일을 손꼽기도 할 것이다. 설렘과 긴장 속에서 창작을 선보이는 작업이 좋지만 부담 없는 전문 구경꾼이 되는 일도 행복하다. 소문난 공연이 있는 극장에서 자주 모습을 뵙게 되는 한 원로 배우의 남은 인생의 꿈은 외국이든 어디든 좋다는 공연을 찾아다니면서 관람 유람을 하는 것과 끝까지 현역으로 남아 무대에서 죽는 일이라고 한다. 얼핏 듣기에 그 소망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닌 듯싶지만 전 세계의 좋은 공연을 찾아다니는 일이나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극적인 상황은 바람대로 이루기가 쉽지 않다. 관람 유람은 현실의 어려움이 있고,무대에서의 죽음은 로맨틱하긴 하지만 한편 배우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성황리에 공연 중인 외국 명작을 보고 싶다면 굳이 해외로 갈 필요가 없다. 요즘은 뮤지컬뿐 아니라 무용 작품이나 정통 연극도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품이라면 어김없이 내한공연을 갖는다. 물론 이제 우리나라도 공연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었고,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좋은 공연을 유치하는 아트센터나 관소속 극장의 문화의식과 기획력이 성장한 덕이다. 기업이 수익의 일부를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번듯한 극장을 세우고 그에 걸맞은 공연물을 제작하거나 초청하는 일은 큰 미덕이다. 그러나 재산이 되는 미술품은 열혈하게 수집하여 세계적인 미술관까지 갖춘 문화 엘리트가 창업자의 이름을 딴 공연장은 제쳐놓아 용도가 다한 극장으로 전락하거나,나라 돈으로 지은 극장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공연장으로서 생산성이 없는 극장은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목적으로 지은 극장,그러니까 연주회도 하고 연극도 하고 젊은이들의 콘서트장이나 심지어 영화관 등등,여러 용도로 쓰이는 극장은 연극 공연장으로서는 최악의 공연장이라 할 수 있다. 또 애초에 연극을 목적으로 지은 극장이 연극 공연장으로서의 매력 있는 극장이 되지 못하는 제일 큰 이유는 건축가가 건축물만을 우선하여 지었거나 공연 현장에 있는 전문가의 조언을 제대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건축가가 지은 공연장 객석의 벽이 온통 밝은 나무로 장식된 기막힌 실책이라든가,공연 중심의 공간이 건축미학의 제한에 좌우되어 기형적인 공연장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로비와 객석은 호화로운데 무대는 깊이며 높이가 부족하고,사석이 있는가 하면 분장실은 뒷방으로 밀려나 있거나 아예 생략된 경우까지 있다. 배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객석에서 LCD 모니터까지 갖춘 좌석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누군가 극장을 지으면서 이상적인 극장을 위한 조건들을 제시해 보라고 제안한다면 염원하건대 그 중 하나는 출연 배우를 위한 개인분장실 마련이다. 현실의 제약이나 도덕의 한계 내에서 절대치를 발휘해야 하는 배우들에게 영혼을 표현하기 위한 준비된 시간,준비된 공간이 절대 필요하다. 공연 전 배우를 지고의 본질로 만들 분장실은 극장이 배우에게 바쳐야 하는 존경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제 오랫동안 주차장으로 쓰였던 대학로 심장부에 극장이 있는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데,제발 그 극장은 무대 공연에 최적인 꿈의 극장이 되기를 빈다. 극장은 한 번 지으면 수십년 동안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이라 잘 만들면 모두의 자랑이고 실패하면 건물의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생명력을 잃는다. 성과에 급급한 행정가들에게 고언을 드린다. 과업 위주의 건축으로 인해 두고두고 후세의 불만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 참여자,사용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예술공간을 남길 것인가? 한태숙(연출가·극단물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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