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일보]<공연리뷰·신의 아그네스>순수를 토해내는 농익은 연기
  • 등록일2007-03-24| 작성자 의정부예술의전당

[경인일보]2007년 03월 08일 (목) / 이유리 agnes71@kyeongin.com


[공연리뷰·신의 아그네스]순수를 토해내는 농익은 연기 갓 낳은 아기를 탯줄로 목졸라 죽인 수녀 이만큼 거대한 스캔들이 있을까. 게다가 그 수녀의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아그네스(순결, 신성함이라는 뜻)다. 지난 2~4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연극 신의 아그네스 얘기다. 이 연극을 번역한 홍서희씨는 "왜 하필 나의 나가 아닌 신의 아그네스여야만 하는가. 아그네스의 아그네스였다면 결말은 아주 달라졌을 것"이라는 재밌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만약 나의 나로서, 아그네스의 아그네스였다면, 그토록 주체성이 강한 여자였다면 그녀는 정신착란의 상태까지 갔을까. 우리는 현실에 지칠 때, 의지할만한 그 무언가를 찾게 된다. 내일을 버텨낼 수 있는 어떤 영적인 힘, 즉 종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달래고자 한다. 그만큼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 하지만 나약은 죄가 아니다. 주인공 아그네스는 나약의 극치에 이른 인물이다. 과학은 상처를 더 커지게 할 뿐이라는 미리암 원장수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닥터 리빙스턴은 최면요법을 통해 아그네스의 기억을 복구하게 되면서, 아그네스의 상처투성이 과거가 드러난다. 아그네스를 원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이러한 그녀의 무지는 종교적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상처받은 과거는 현실을 거부하고, 그에 대한 회피로 더더욱 종교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심리현상이 아닐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몸담게 된 이 세계는 신에게서 버려진 세계와 다를 바 없다. 이 황량한 세상에서 아그네스는 (모호하게 처리되긴 했지만) 신의 성령에 의해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자신과 같은 불행을 없애기 위해 이런 \실수\를 한 신에게 아기를 돌려주려고 어머니의 환영속에서 아이를 죽이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얼마뒤 그녀는 정신병동에서 숨을 거둔다. 아그네스는 하나의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아그네스라는 이름 자체가 신께 바쳐지는 속죄의 제물인 어린양이라는 뜻이다. 신을 잊어버리고 거부하는 이 세상에 희생 제물로 바쳐진 이 시대의 신의 어린양(Agnus Dei, Agnes of God). 철저히 무신론자였던 리빙스턴의 마지막 대사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녀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아그네스가 정말로 제게 그 무엇을 남기고 갔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것이…기적이라 말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한편,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이 연극을 한편으로 즐겁게 볼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힘이 컸다. 박정자와 손숙의 연기대결은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흡인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역시 명성은 절로 쌓이는 게 아닌가보다. 또 하나, 아그네스 역의 전예서는 신인같지 않은 모습으로 쟁쟁한 배우들과도 전혀 뒤지지 않는 듯한 열연을 보여줬다. 순수한 목소리에 아기같은 그녀는 최면상태에서 상처로 괴로워하는 대조적인 광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도 갖추고 있었다. 신의 아그네스는 역시 아그네스를 위한 연극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성남공연 뒤에도 6월에 안산과 의정부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라고 하니,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다. 2007년 03월 08일 (목) 이유리 agnes7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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