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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무엇을 할 것인가. 체르니셰프스키 소설 제목이다. 순전히 제목에 ‘혹’해서 읽었던 20대의 기억이 생생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극단 산울림이 한국 초연 40주년을 기념해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는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물음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적한 시골길.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있는 언덕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방랑자가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이들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위해 쉴 새 없이 떠벌인다. 서로 질문하기, 되받기, 장난, 춤추기, 욕하기 ….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하루 해가 다 지나도록 고도는 오지 않는다. 대신 한 소년이 나타나 고도가 내일은 꼭 오겠다고 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사라지면서 1막이 끝난다. 2막이 전개되는 다음날 역시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된다. 극은 2막에서 끝을 맺는다. 관객은 극이 이어져도 결국 고도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의식과 행위를 보자. 자세히 보면 이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거짓된 희망’으로 읽힐 수 있다.
사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가 누구인지, 언제온다는 것인지, 만난다는 장소가, 지금 여기가 맞는지 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쯤에서 묻자. 2009년, ‘고도를 기다리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대답은 유보하기로 하자. 다만, 작중 인물 ‘블라디미르’·‘에스트라공’과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는, ‘88만원 세대’로 분류되는 현재의 절망적 20대를 잠깐 비교해보는 것으로 그치자.
안정적 일자리의 수가 무섭게 줄어들었고 비정규직은 기록적으로 늘어났으며 ‘승자독식’ ‘선택과 집중’이 당연시 되는 사회가 됐다. 특히 과거 한국 자본주의의 ‘좋았던 시절’을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승자독식 논리는 거의 생존 본능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마지막에 혼자 살아남는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이 철학은, 희망을 절망으로 바꾼다기보다, 희망을 ‘판매’ 하게 만든다(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 p. 309).
[중부일보]2009년 09월 22일 (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