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아침] 문화·예술의 지방자치 시대
지난 2004년 국내 유수의 인터넷 기업 다음(www.daum.net)이 본사를 제주도로 옮기겠다고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결정을 ‘미친 짓’이라고 했다. 정보통신(IT) 산업의 본거지인 테헤란로를, 혹은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을 떠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 탓이다.
전라도, 경상도를 들먹이며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지역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서울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 대해 느끼는 소외감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세계 그 어떤 나라 보다도 중앙집권적이며 거의 모든 일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정치나 경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예술의 경우도 더하면 더했지 모자람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올해 초 내놓은 ‘2008 문예연감’에 따르면 지난 2007년 한 해 동안 열린 미술 전시회의 59.08%, 연극 공연의 50.17%, 무용 공연의 47.66%, 국악 공연의 47.53%, 뮤지컬 공연의 42.55%, 클래식 공연의 37.14%가 서울에서 이뤄졌다. 가히 ‘서울 공화국’이라고 할만한 통계 수치다. 또 지방 공연이나 전시회의 상당수가 서울에서 제작된 콘텐츠의 지역 순회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눈앞은 더욱 깜깜해진다.
그런 점에서 최근 경기 고양, 대전, 대구 등 3개 지방도시가 힘을 합쳐 오페라 공동 제작에 나선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경기 고양아람누리와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대구오페라하우스 등 지역 공연장들이 제작비를 공동 분담해 직접 기획·제작하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지역의 문화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민의 문화 향유권을 신장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로 보여진다.
물론 이런 시도가 과거에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5∼2006년 수원, 고양, 군포, 포천, 의정부 등 경기 지역 공연장들이 의기투합해 록 뮤지컬 ‘로미오 & 줄리엣’과 오페라 ‘나비부인’을 공동 제작해 무대에 올린 바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빈약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관객을 서울에 빼앗기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들의 실험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고 말았다.
공동제작(co-production)은 공연에 비하면 훨씬 산업화된 영화 분야에서도 일종의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할리우드라는 골리앗을 상대해야 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다양한 방식의 합종연횡을 통해 시장 확대와 관객 확보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실제로 공동제작은 문화와 언어의 장벽, 이익의 재분배 문제, 제작 주체간의 갈등 등 여러가지 난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공동 출자로 인한 제작비 절감, 풍부한 인력풀의 가동, 지역간의 문화적 교류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여전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제작방식으로 선호되고 있다.
문제는 보다 면밀한 산업적 접근과 지속성 여부다. 주먹구구식의 일회성 이벤트에 머물러서는 ‘문화·예술의 지방자치 시대 개막’이라는 거창한 구호는 구두선(口頭禪)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공연장 등 문화 주체들이 ‘다윗의 지혜’를 발휘할 때다.
/sm64@fnnews.com
[파이낸셜뉴스]2009년 09월 04일(금) 오후 07:40/정순민 기자sm64@fn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