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2006년 12월 29일 금요일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35년 예술인생 함께한 비결은 솔직함” 드라마 같은 사랑… 파리서 첫눈에 반해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피아니스트 백건우(60)씨가 ‘건반 위의 시인’이라면 그의 아내 윤정희(62)씨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아름다운 선율을 뽑아내는 ‘시인의 뮤즈’다. 백씨가 있는 곳에 항상 윤씨가 있다. 연습장에도, 공연장에도 둘은 항상 함께 있다. 하지만 위치는 다르다. 스포트라이트는 백씨의 차지이고, 윤씨의 자리는 그늘 속 객석이다. 지난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백건우 리사이틀때도 그랬다. 하루 종일 무대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윤씨는 불 꺼진 객석에 있었다. 이날 밤 공연에서도 객석 뒤편 출입문 옆에 서서 지켜봤다. 윤정희, 그가 누군가. 19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트로이카를 이루며 한국 영화 전성시대를 이끌던 은막의 스타 아닌가. 지금도 대중적 인기면에서 오히려 백씨보다 앞서면 앞서지 뒤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화려한 조명의 느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조금은 질투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음으로 백씨의 옆에 앉아 함께 연주하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부처님이 꽃을 들어 좌중에 보여줬을 때 가섭만이 알아듣고 웃었다는 ‘염화시중미소(拈花示衆微笑)’가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해 줄 것 같다. 19일 예술의전당 연습장과 공연장에서, 또 투어 리사이틀 사이 잠깐 시간을 낸 27일 조선호텔 커피숍에서 두 사람을 만나 30년 넘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꾸어온 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 클래식 음악과 영화, 서울과 파리의 거리(距離), 그리고 남은 꿈 등 4막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 1. 삶과 사랑 = 그들의 사랑은 한 편의 드라마로 기억된다. 글쓴이가 10대 초반이었을 때다. ‘선데이 서울’쯤 되는 주간지였던 것 같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그 시절 ‘만인의 애인’ 윤정희씨가 문이 열린 차에 앉아 오른손으로 핸들을 잡고 왼손으로 문 앞에 서있는 백건우씨의 허리쯤을 잡고 있는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건우, 내 사랑…’이라고 가운데가 까맣고 밖으로 하얗게 테를 둘러 마치 번갯불 표시처럼 쓴 70년대식 키치한 제목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던 것 같다. 그 나이에 이런 주간지를 볼 수 있었던 글쓴이의 가정 교육 상황을 비난해도 분명 할 말은 없다. 인터뷰 서두를 이렇게 떼자 윤씨는 얼굴이 빨개지며 “그런 일 없다” “오보”라고 딱 잡아뗐다.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글쓴이도 자신이 없어 한발 물러서자 윤씨는 “베토벤을 알리러 왔다. 사생활 얘기는 피해달라”며 “신비감이 없어지지 않느냐”고 매력적인 미소로 말머리를 풀어갔다. 하지만 독자들이 먼저 궁금해하는 것은 베토벤보다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돌아돌아가며 사이사이 물어 조각을 맞춰 보면 이들은 1972년 파리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L씨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그때 백씨가 현대음악가 스크랴빈의 곡을 연주했는데 윤씨는 그만 여기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남자는 시각정보에, 여자는 청각정보에 약하다는 속설을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의 사랑이 증명하는지 모르겠다.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은막의 스타로서 윤씨의 외모는 더이상 설명할 나위가 없고, ‘건반 위의 시인, 구도자’등으로 불릴 정도의 백씨의 담백, 중후한 피아노 연주모습에 어떤 여자가 반하지 않으랴. 지금 남자라도 빠지고 싶은 긴장 내지는 응축된 에너지다. 윤씨는 그때 스크랴빈이 누군지도 몰랐다. 하지만 음악은 일체의 형식을 뚫고 가슴으로 곧바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윤씨는 “여자가 먼저 사랑한다고 그럴 순 없다”며 결코 자신이 먼저 사랑을 고백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장면에서 그는 ‘건우, 내 사랑…’과 같은 주간지 기사처럼 ‘윤씨가 백씨를 잡았다’는 세간의 소문은 잘못된 것이니 이번 기회에 사실을 분명히 밝혀 달라고 부탁했다. 백씨가 “언덕 위에 있는 나의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먼저 프러포즈했다고 저간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백씨가 뭔가 부연하려 했으나, 윤씨의 말이 계속 이어지자 입을 다물었다. 파리에서 둘만의 사랑을 알콩달콩 키워갈 무렵, 문제의 L씨가 한국에 이 사실을 알리는 통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한국 영화 전성시대를 이끌던 디바가 일반인에게는 무명에 가까운 피아니스트와 사랑에 빠졌으니 대형 스캔들, 아니 로맨스 기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신비감이 없어진다”며 언급을 회피하는데, 당시 이와 관련해 윤씨와 백씨의 설명은 거의 없었다. 이에 따라 무책임한 추측성 보도가 만발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 스타들의 사랑은 화르르 타오르는 것만큼 쉽게 사그라진다. 몸 이상으로 성격들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윤씨와 백씨 역시 몇 마디만 나눠 봐도 성격이 보통 강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의 사랑은 달랐다. 35년째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꼭 붙어 다닌다. 나이가 들면서 더 그런 것 같다. 이와 관련, 윤씨에게 ‘왜 그렇게 꼭 따라다니느냐’고 물었다가 혼이 났다. “‘따라’ 다니다니요. ‘같이’ 다니는 거죠”라고 예쁘게 흘겨보며 쏘아붙이는데 즉각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서로에게 솔직했던 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면 비결”이라면서 “거짓 없이 서로의 거울이 돼 서로의 의견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또 윤씨는 음악을, 백씨는 영화를 사랑하는 등 “서로의 일을 서로 좋아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35년째 살면서도 다툼이 없었을까? “모든 일을 50대50으로 똑같이 하는 겁니다. 애기도 같이 보고, 청소도 같이 했어요. 집안일뿐 아니라 바깥일도 같이 했어요. 시나리오도 같이 골랐고, 곡도 같이 고르고 연구하고 의상도 같이 사러 갔습니다.” 거의 한목소리로 일치된 답이 나온다. 하도 다정해 보여 ‘윤씨가 결국 영화를 못했으니 손해 본 결혼이 아니냐’고 어깃장을 놔봤지만 “30년 결혼생활에 영화 20편 했으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영화를 그만둔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윤씨는 반박했다. 오히려 영화제 심사나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지휘자 바렌보임 등을 인터뷰하러 갈 때 남편 백씨가 도와줘 심도 깊은 인터뷰가 가능했다고 자랑했다. 윤씨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달이다. 달빛에 물들면 모두가 전설이 된다고 할까. 달에 관한 에피소드에 대해 윤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날 밤 이 사람이 깨우는 거예요. 졸려 죽겠는데. 그런데 정말 아름다운 달이 창문 가득 있잖아요.” 백씨는 이에 대해 “연습을 하다 잠자리에 드는데 달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이 사람이 달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날밤 달이 창문을 넘어 공격하듯 크게 다가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을 깨웠죠. ‘여보 저 달을 좀 봐! 저게 달이야’ 라면서요. 지금도 그런 달을 발견하기 쉽지 않아요.” 두 사람은 “거짓을 떨어버리는 예술작업처럼 생활도 그렇게 한다”며 “허례허식을 버리고 보니 모든 것에 일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먹는 것부터 취미는 물론 인생 관, 정치적 생각까지도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정치? 예술가들이 쉽게 떠올리는 단어가 아니다. 정치적 논쟁이 일상인 프랑스에서 사는 예술가들인지라 쉽게 정치적 견해도 나오는 것 같다. 백씨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자체가 문제”라며 “세상엔 진보와 보수가 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씨도 “보수만 주장해서도 안되고, 진보만 주장해서도 안된다”며 “그렇게 하나로 단정하는 게 위험하다”고 받았다. 둘은 한목소리로 “진보와 보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라며 “표만 얻기 위해 헛된 공약을 하고,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안된다. 책임을 지고 필요한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부창부수(夫唱婦隨 또는 婦唱夫隨)다. # 2. 클래식 음악과 영화 = 백씨는 굉장히 내성적으로 보인다. 10여년째 서울과 파리에서 그의 음악회를 빼놓지 않고 다니고, 같이 식사를 한 적도 몇 번 있지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2시간 가까이 두 차례 계속된 인터뷰를 통해 낯이 익자 다방면의 화제에 대해 막힘없는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가끔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유머도 부드러운 가운데 풍자가 더해져 날카로웠다. 그는 “나의 음악회에는 관객이 10대 미만부터 60대까지 골고루 있는 것이 아주 좋다”면서 “이것이 클래식의 힘”이라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은 생명수 같은 순수입니다. 제대로 전달되면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지요. 하지만 잘못 전달되면 가벼운 팝처럼 쏠림이 있습니다. 또 케케묵은 박물관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왔고, 믿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필요한 언어로 옮기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주여행의 동반자인 윤씨는 “최근 시골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은데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뒤에서 뭐가 있나 어깨 너머로 살펴보다가 ‘선생님 존경합니다’하고 외치고 막 뛰어가는 아이, 초콜릿 몇 개 놔두고 도망가는 아이 등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프랑스 아이들은 얌전하기만 한데 우리 아이들은 감정이 풍부하고, 속이 깊어 아직 순수가 살아있습니다. 한국은 확실히 희망이 있어요. 교육만 받쳐주면 돼요.” 백씨의 음악은 거꾸로 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보통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등 고전에서 라벨, 스크랴빈 등 현대음악으로 가는데 그는 현대음악에서 고전으로 간다. 이에 대해 그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거꾸로가 아니다”고 말했다. “아주 어린 애들은 단순하고 리드믹하고 활발한 것을 좋아하잖아요. 자라면서 비로소 멜로디 깊은 것을 좋아합니다. 젊었을 때 단순하고 활발한 현대음악을 하다가, 나이들어 로맨스를 알고, 그리움을 배우며 화음이 풍부한 음악을 연주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는 오히려 “10대에 바흐로 유명해진 글렌 굴드가 비정상”이라며 “그는 결국 그 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라벨, 스트라빈스키, 스크랴빈을 거쳐 바흐로 간 나의 길이 평범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 교육은 바흐부터 시작한다. 현대음악 공부는 학생들에게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유명 교수는 ‘현대음악은 실패한 장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백씨의 의견은 달랐다. “제가 가르친다면 저는 거꾸로 하겠습니다. 현대인에게 현대음악이 쉽게 들어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17, 18세기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어린이들이 하이든이나 바흐의 베이스(기초)에 대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쇼팽, 슈만 등 달콤한 음악을 10대, 20대때 연주하고 나이가 들며 브람스, 베토벤, 바흐로 나가야 합니다.” 지난 19일 리사이틀은 이같은 그의 음악철학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무대였다. 지난해부터 도전하고 있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로 베토벤에 영향을 받은 거장들의 작품과 더불어 슈톡하우젠의 강렬한 현대음악을 젊은 감각으로 연주, 큰 박수를 받았다. 매번 같은 작품 안에서도 과거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그 무엇을 발견해낼 때 즐겁다. 백씨가 ‘구도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그의 성실성 때문이다. 한 작곡가의 시리즈 작품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그의 스타일은 이미 20대부터 유명하다. 26세때 라벨의 피아노 전곡 연주를 시도하면서 그는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세기 끝 무렵 그는 두 번째 라벨 전곡 연주회를 시도했다. 이는 젊은 시절의 라벨과 또 다른 차원의 연주로 기록됐다. 최근 그의 화두는 베토벤 소나타다. 현재 그 전집 리코딩이 진행중이며, 중기와 초기 소나타집이 완성됐고 이번 한국 투어는 그 일환이다. 이날 콘서트에서 첫곡으로 연주했던 그의 모차르트는 멜랑콜리하고 반짝이는 색채감이 넘쳤다. 이전의 그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다음으로 연주한 것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8번이었는데 남성적인 강건함이 손상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드러웠다. 서주부의 화려함이 풍요로웠으며 활기찬 분위기가 전체 곡을 지배했다. 그 역동성은 마지막 다성 푸가에서 충만하게 펼쳐지면서도 베토벤 특유의 견고한 건축미가 탄탄하게 계속됐다. 그는 이날 대부분의 연주를 암보(暗譜)로 소화해냈지만 슈톡하우젠의 피아노 소품 9번은 악보를 들고 나왔다. 가장 낮은 음계에서 가장 높은 음계를 폭넓게 사용한 이 현대음악은 각장을 연주가가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도록 연성을 포함한 작품이다. 이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연주가가 건반 위에서 손을 내려놓을 때까지 박수를 참으며 정적을 즐기는 관객들이었다. 딱 한 사람이 미리 박수를 쳤으나 아무도 거기에 호응하지 않는 정적속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죽음’은 정말 예술적 완성을 봤다. 한국의 관객들이 백건우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이런 예술적 진공에 윤씨는 어디에 있는가. 은막의 스타, 윤정희는 외롭지 않은가. “왜 그렇습니까. 우리 세사람(윤씨, 백씨, 그리고 그들의 딸)은 모두 영화 마니아예요. 딸이 바이올린을 전공하며 저(백씨)처럼 음악을 하지만 모두 영화 전문가랍니다. 집에 비디오가 3000편 있어요. 이것을 보면서 와이프의 작업을 우리 모두 고민합니다.” 이렇게 합작으로 강하게 나오는데 더이상 추궁할 길은 없다. 추신으로 물었다. ‘왜 딸은 연주여행에 함께 하지 않느냐’고. 윤씨는 이에 대해 “그 나이에 아직도 부모를 따라다니면 탯줄이 끊긴 게 아니다”고 잘랐다. 지금 둘의 연주, 또는 촬영 여행이 지금 그들의 삶이라는 부러운 느낌이 들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새해에는 후대가 아니라 지금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들렸다. # 3. 서울 그리고 파리 = 백·윤 부부는 스스로를 “러키한(행운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서울에서는 파리가 아름답게 느껴지고, 파리에서는 서울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등 정치만 빼고 모든 게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파리에 산 지 30년이 넘지만 국적은 여전히 한국인이다. 외국에 살수록 애국자가 된다고 할까. 한국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낭비와 사치다. 이들은 “단순하게 살겠다”는 자신들의 말처럼 자동차도 없이 소박하고 검소하게 산다. 윤씨는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 그렇게 쓰고 싶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필요하면 사겠지요. 하지만 필요가 없어요. 연주여행이 일과이고, 그 경우 공항까지 차가 나오거든요. 파리에서는 지하철, 버스를 타거나 걸어다니면 돼요. 같이 걷고 산보하는 게 우리의 유일한 운동이기도 합니다.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얼마나 좋아요.” 백씨가 공연때 신는 신발은 ‘남대문산(産)’이다. “몇년전 연주회용 신발을 잃어버렸어요. 급한 대로 호텔 근처 남대문시장에 갔더니 3만원이면 좋은 것을 살 수 있더라고요. 주인이 저를 알아보고 5000원 깎아주기도 했습니다.(그 신발을) 신고 연주했는데 정말 편했어요. 그래서 한 켤레 더 사서 하나는 파리에 놓고, 하나는 서울에 가지고 다닙니다. 그렇게 싸고 편한 것을 놔두고 왜 몇십배 비싼 걸 사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우리가 뭔가 잊고 사는 게 아닌가 스스로 반성했습니다.” 이들은 “정말 중요한 것만 생각하고 필요없는 데 신경쓰지 않는다”고 자신들의 삶의 목표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들은 파리 집에 컴퓨터가 3대 있지만 거의 손을 안 댄다고 했다. “복잡한 곳에 들어가기가 싫어요. 정보가 너무 많아요. 정작 우리가 필요한 정보는 얼마 없고요. 요즘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신의 의견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윤씨) “고민해서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습관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너무 쉽게 모든 것을 얻다 보니 가치를 모르고 자기 판단 없이 유행에 휩쓸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백씨) # 4. 그리고 남은 꿈 = 부부의 목표는 일단 베토벤 전곡 연주의 안착이다. 백씨는 “항상 그렇지만 시작하고 나면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베토벤 도전이 마치 에베레스트 산맥에 도전하는 산악인 같은데 지금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전곡을 치면서 새롭게 발견한 곡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못 들었던 베토벤 소나타가 이렇게 많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있다는 소개와 함께 이런 해석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모르는 세계에 대한 부담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저도 두렵습니다. 마치 지도 없이 산에 들어가는 것과 같지요. 하지만 헤쳐 나갈 겁니다.” 백씨는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금 자신의 예술에 대해 말했다. “열몇살때일 거예요. 미국에서 애덤 스미스에 대해 처음 들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데 능력에 맞게 하는 게 가장 생산력이 높다는 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아니에요. 바로 그겁니다. 스스로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나는 물론 나라를 위한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는 지금 “서양(문화)은 한계에 이르렀다”면서도 “그들은 동양을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그들은 환상만 봐요. 백제문화가 세계 최곱니다. 그런데 프랑스 문화의 최고봉인 앙드레 말로는 일본의 관음보살상만 봤죠. 그것이 한국에서 온 것인지는 몰랐어요. 그것은 프랑스 사람들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 잘못입니다. 제대로 다시 시작해야 해요.” 백씨는 이번 연주가 “히말라야 등반에서 세컨드 캠프”라며 “내년에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일 나 파 드 리발(ll n’a pas de rival·경쟁은 없다), 결국 혼자 가야 한다”면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계획이 없다. 죽을 때까지 성실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가지만은 약속할게요. 야심, 욕심 없습니다. 음악과 영화, 다시 말해서 예술,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단순합니다. 소극적이지요. 욕심내고, 더 돈 벌고, 비싼 차 타고 싶은 생각 없어요. 저희들의 삶의 목표는 자유입니다. 필요없이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우리들 방에 가득 찬 달빛, 그것이면 만족해요.” 아름다운 부부의 아름다운 한해의 돌아봄이며, 새해 희망이었다. 새해는 허영을 떨치고 작은 소망으로, 사랑으로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들 부부가 몸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6/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