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예술교육, 실기보다 생활속에서 즐기게해야”
  • 등록일2009-02-14| 작성자 관리자

<文化데이트>임연철 신임 국립극장장
“예술교육, 실기보다 생활속에서 즐기게해야”


‘25년간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일했고, 10년 가까이 공연기획을 했으며, 공연도 경영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공연예술학 석·박사를 땄다. 그 뒤 학교와 현장에서 끊임없이 문화예술 홍보와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우 거칠게 정리한 임연철(61) 신임 국립극장장의 이력이다. ‘과거의 길’이란 결국 현재를 말해주기 마련인데, 임 극장장의 다분히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적인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우리말로 바꿔보면 보편·교양인적인 전문가로서의 과거 이력은 극장장이라는 현재와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 이 역시 거칠게 정리해 보자면 홍보와 마케팅에 대한 특별한 강조로 연결된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극장장실에서 만난 임 극장장은 2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홍보와 마케팅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문화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서 광고 마케팅이 배보다 큰 배꼽이 되고, 때로는 실체를 잡는 시대에, 그것도 흔히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 예술에 홍보·마케팅을 강조하다니라는 생각이 슬쩍 고개를 쳐들려 했다. 하지만 실전에서 익혔다는 그의 철학은 쳐드는 생각의 고개를 꺾어버렸다. 지난달 취임한 그가 말하는 문화 마케팅은 협소한 기술이 아니라 관객과의 소통이고, 매우 장기적인 우리 사회의 교양적 예술인 만들기였다.

“문화예술 마케팅에서 4P라는 것이 있습니다. 작품(Production), 가격(Price), 공연장(Place) 그리고 프로모션(Promotion)이지요. 그런데 공연은 예술가들이 만드니 일정한 수준이 되고, 가격도 클래식 공연, 특히 국악공연은 손해보지 않을 정도의 가격으로 책정됩니다. 또 큰 공연장이라면 몇 군데가 꼽히니 이들 3가지 P는 현실적으로 큰 변수가 되지 않아요. 오히려 마지막 P인 프로모션이 중요하지요. 사람들이 프로모션을 오해하는데 부풀린 광고가 아니라 공연과 관객을 이어주고 소통시키는 것이지요.”

이는 그의 경험에서 이뤄진 마케팅론이다. “신문사 사업국장을 하면서 10년 가까이 공연, 전시를 기획하며 표를 팔았는데 쉽지 않았다”는 그는 “우리 문화의 바탕이 너무 얇다는 생각,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연에도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공연예술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마케팅론은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생각인 것이다.

이렇게 원론을 설명한 임 극장장은 이어 국립극장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로 옮아갔다.

“국립극장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동안 전통을 현대화해 국가 브랜드가 될 만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4개 전속단체인 국립극단의 ‘태’, 국립창극단의 ‘청’,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네 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입니다. 21세기 초의 의미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관객이 그 정도에 머물렀을까요?”

그가 던진 답에 대한 그의 대답은 “마케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국립극장이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새롭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전제한 그는 “하지만 국립극장 산하의 4개 단체들은 연극, 전통음악·무용과 관련해 최고의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국립단체이다”라면서 “그러니 절대 작품을 탓하지 말고 다만 관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임 극장장은 단기적 전술로 홍보·마케팅 라인의 빠른 정비를, 장기적 전략으로 연극과 국악의 잠재적 관객을 개발하는 작업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국립극장은 산하단체를 보면 연극과 국악 중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부터 가무악일체라고 했으니 무용도 총체적 의미의 국악에 들어가니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국악팬층은 두텁지 않지요. 국악이 현대화돼 요즘은 대중가요, 힙합, 재즈까지 연주할 정도로 다양해졌어요. 또 바쁜 현대인의 생활속에서 ‘느림의 미학’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같은 새로운 국악을 많이 접하지 않아 잘 알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즐길 수가 없습니다”고 그는 아쉬워했다. 이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 예술 교육에 대한 총체적 아쉬움으로 이어졌다.

“우리 사회의 예술 교육은 실기교육 중심이다”는 그는 “많은 어린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지만 전공을 하거나 계속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일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아노를 중간에 그만두는 어린이들의 일부는 피아노를 지겨워하고, 이 때문에 자신은 음악에 소질이 없다거나 음악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아이들은 이때부터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내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예술 교육이 실기위주에서 감상위주, 생활속에서 즐기는 예술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공연예술은 경험재이기에 경험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습니다. 라면 봉지에 적힌 라면 끓이는 법을 보면 누구나 라면을 끓일 수 있지만 예술 상품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즐길 수 없습니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자면 표를 못 파는 것이죠.”

이야기는 다시 마케팅으로 돌아왔고, 장기적 프로모션 전략인 잠재적 관객 개발을 위한 노력의 구체적 방법론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그는 국립극장을 장기적 잠재고객인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상설교육의 장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10월에 문을 여는 국립극장의 공연예술박물관과 공연장 등을 연결해 40~50분짜리 예술 감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국악을 중심으로 각각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며 국악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겠다는 것이다. 수학여행단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겠다는 열의도 보였다. 또 주부들을 겨냥한 낮시간 공연프로그램을 만들어 낮시간 공연을 본 주부들이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공연장을 찾으면서 우리 사회의 예술 교양인의 두께를 두텁게 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예술은 아름다움과 정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술 활동을 즐기는 사람은 악할 수가 없어요. 여유있고 정서적인 교양인을 만들지요. 우리 사회에 예술적 교양인이 적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각박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문화를 뜻하는 컬처(culture)는 결국 기르고 양성하는 컬티베이트(cultivate)잖아요. 문화는 거친 사람들을 교양인으로 기르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교양적 예술인’은 어떤 사람일까. 임 극장장에게 질문을 던지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빼어난 예술 작품을 통해 감동과 자극을 받고, 정서와 마음을 순화하지요. 저는 우리 사회의 품위있는 교양인이라면 1주일에 한 번 정도 그런 감동과 자극을 받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그는 “아마 사람들은 1주일에 한 번 예술적 감흥을 받아야 한다면 여유있는 소리라거나 먹고 살기도 힘든 요즘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며 “하지만 예술은 돈이 많아야 즐기는 것, 온갖 일을 다하고 시간이 남아야 즐기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수십만원짜리 외국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직접 보러 간 사람들보다 CD나 라디오를 통해 그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듣는 사람이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생활 속으로 찾아가는 좋은 공연들이 아주 많다며, 조금만 눈을 돌린다면 일상 속 예술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 기자 시절에는 좋은 공연이냐 나쁜 공연이냐, 혹은 좋아하는 작품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취재를 위해 모든 공연장을 찾았다는 그는 일선 기자에서 물러난 뒤에는 자신의 자유로운 개인적 취향을 좇아 공연장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의 취향이란 실험적이고 예술적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같은 자유로운 관람객 입장을 떠나 운영자로 극장에 들어섰다. 자신의 취향인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국립극장에 올라가느냐고 물었다. “운영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는 것이다. 실험성과 대중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그는 “상업적 예술과 비상업적 예술의 경계는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느냐, 새로운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확대하느냐에 있다”며 “국립극장이 전통의 현대적 창조 작업을 토대로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작품의 인큐베이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연철 극장장은…

▲1948년 충남 논산 출생 ▲1967년 서울 사대부고 졸업 ▲1972년 서울대 사학과 졸업 ▲2002년 중앙대 예술대학원(예술경영) 석사 ▲성균관대 대학원(공연예술) 박사 ▲1974~1978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1978~2007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논설위원, 사업국장 등 역임 ▲2003~2005년 (재)장보고기념사업회 비상임이사 ▲2007~2008년 중앙대 초빙교수 ▲2005~2008년 (재)서울시립교향악단 비상임이사 ▲저서 ‘문화예술 홍보론-문화예술 관계자들의 홍보 마케팅 필독서’(커뮤니케이션북스·2007), 공동번역서 ‘문화예술마케팅’(커뮤니케이션북스·2007) 등

최현미기자 chm@munhwa.com


[문화일보]2009-02-14 /최현미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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