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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50주년 음반 내고 전국 콘서트 하는 가수 이미자
“달라진 목소리 스스로 느껴 … 마지막 신곡 내놨다” 1920~60년대 선배들 노래 ‘문화재’로 남기려 녹음 금지곡 ‘동백아가씨’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불러 “요즘 노래들 단지 흥에 겨워 부르는 것 같아 아쉬워”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가수 이미자(68·사진)씨. 그의 노래엔 한국인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슬픔의 정서를 보듬는 특별한 힘이 있다. 그 힘으로 50년을 노래하고 또 노래해 왔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는 그를 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얼 그레이로 드릴까요? 재스민으로 드릴까요”라는 호텔 직원의 말에 “나는 그런 거 잘 모르니 아무거나 줘요”라고 조용히 답했다. 반백년 시간을 가요계 정상에 머물며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정말 마지막이 될 앨범=“10년 전 40주년 기념 음반을 낼 때도, 5년 전 45주년 기념공연을 할 때도 ‘이게 내 마지막 음반, 마지막 공연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내 노래를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또 50주년이 됐네요.”
새삼스레 50주년을 기념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았다”는 주변 이들의 응원에 힘을 얻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 될’ 앨범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그가 이번에 발표하는 앨범 ‘이미자 50년, 세상과 함께 부른 나의 노래 101곡’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발표했던 곡 중 인기를 얻었던 곡들을 골라 차곡차곡 담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1920~60년대 인기를 얻었던 선배 가수들의 노래인 ‘사의 찬미’ ‘눈물 젖은 두만강’ 등 30곡을 따로 녹음했다. 50년간을 한국 가요계에서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이제는 자취를 찾기가 어려워진 한국 전통가요의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였다.
“선배 가수들의 노래 30곡은 ‘가요 문화재’를 남긴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습니다. 이미 노래를 부른 선배님들이 세상을 떠나셨고, 당시 음반들도 거의 없어져 원곡을 듣기가 힘들어요.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는 사명감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최대한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녹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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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 년 발표 노래 2100곡=기념음반에 담을 자신의 히트곡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50년간 그가 발표한 곡은 무려 2100여 곡. 그 중 ‘히트곡’이라 할 만한 노래가 400곡을 넘는다. 고등학생 때 한국 최초의 민영방송 HLKZ의 ‘예능 로터리’에 출연해 최고상을 받으며 데뷔한 뒤, 몇 년 간을 1년에 앨범을 10장 이상 발표하는 믿기 힘든 생활을 해 왔다.
“연습도 없고, 스튜디오 가서 반주 맞춰보고 바로 녹음하는 식으로 음반을 찍어냈어요.” ‘흑산도 아가씨’를 녹음할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부산에서 공연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바로 녹음실로 갔어요. 이미 ‘흑산도 아가씨’라는 영화가 완성되고 음악만 입히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목소리도 안 나오는 새벽에 피아노 반주 한두 번 듣고 바로 녹음이었죠. 그런 노래가 그렇게 히트할 줄은 몰랐어요.”
64년 발표된 ‘동백 아가씨’는 무려 35주간 인기차트 1위를 차지했다. 너무 인기가 많다 보니 시련도 찾아왔다. 다른 음반 회사들로부터 견제가 들어온 것이다.
“내 음반을 제외하고 다른 노래들은 거의 안 팔리는 상황이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내 음반에 다른 음반을 끼워파는 가게들도 많았죠.”
‘동백 아가씨’의 인기가 최고에 올랐을 무렵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갑자기 방송금지령이 내려졌다. 이듬해에는 ‘음반제작 금지령’도 발표됐다.
◆20년 넘게 부를 수 없었던 금지곡=50년간의 음악 생활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이 때였다. “처음엔 ‘다른 곡들로 활동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어 ‘섬마을 선생님’이 일본곡과 비슷하다고, ‘기러기 아빠’가 너무 비탄조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금지가 되고 나니 ‘가요계를 떠나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백 아가씨’ 방송 금지에 군사정권이 개입됐다는 추측도 많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단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영빈관에 초청돼 노래를 여러 번 했었어요. 그때마다 제가 부른 곡이 ‘동백 아가씨’였습니다. 대통령도 그게 금지곡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지가 풀리는 데 20년이 넘게 걸렸다. 반가운 마음에 30주년 기념공연에서 이 노래들을 부르려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당시 시민회관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이름을 바꾼 극장 측에서 ‘이미자 노래는 품격이 낮다’는 이유로 공연을 거절한 것이다.
“그때 들은 얘기가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어요. 공연을 불허하는 이유에 대해 ‘이미자를 무대에 세우면 고무신짝들이 판을 쳐서 극장 수준이 낮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의 노래를 폄하하는 것도 서러웠지만, 공연을 찾아주는 사람들까지 홀대하는 게 참을 수 없었다.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고건씨를 찾아가 직접 담판을 지었고, 30주년 공연은 성대하게 열렸다.
◆내 안에 노래가 가득해=이미자씨 자신도 자신의 노래를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고, 한참 미국 음악이 인기이던 60~70년대, 발라드나 세미 팝 쪽으로 장르를 바꿔볼까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주고, 전국 어디서 공연을 하건 ‘산 넘고 물 건너’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 길을 계속 걸어올 수 있었다. “저는 ‘트로트’라는 말이 주는 가벼운 느낌이 싫어요. ‘전통가요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저는 전통가요가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표현하고,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담아낼 수 있는 음악이라고 봐요. 그런데 요즘에는 단지 ‘흥’에 겨워 부르는 노래가 돼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요즘도 무대에 선 그를 보며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안 변했느냐’라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예전만큼 강한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느낄 때도 있다. 50주년 기념 앨범을 작업하면서는 더 이상 새로운 곡을 발표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자신의 가수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신곡을 넣었다. 4월 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이 노래를 사람들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시인 김소엽씨가 작사한 이 곡의 제목은 ‘내 삶의 이유 있음은’. “어린 나이에 ‘열아홉 순정’으로 시작해 지칠 줄 모르고 노래만 해 왔던 내 인생이 그대로 담겨 있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가사는 이렇다. “외롭고 고달픈 인생 길이었지만/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산새는 울고/추운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나 슬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 있음은/내 안에 가득 사랑이/내 안에 가득 노래가 있음이라.”
글=이영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중앙일보]2009.2.10(화)글=이영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