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산티아고에 휘모리 장단 “얼씨구…라보”
  • 등록일2009-01-16| 작성자 관리자

산티아고에 휘모리 장단 “얼씨구…라보”

칠레 국제공연축제 ‘아밀 페스티벌'
한국팀 연극·무용·국악 뜨거운 반응
“전통 재해석이 외국관객 감성 자극"

» 칠레 ‘아밀 페스티벌’에 참가한 창작국악 단체 ‘들소리’가 지난 10일 산티아고 외곽의 야외극장에서 펼친 펼친 <비나리> 공연에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왼쪽) <비나리>의 공연 장면. 사진작가 권영일 제공

 

“얼씨구, 안데스의 하늘에도 달 떴구나!”

꽹꽹! 상쇠가 꽹과리를 치며 추어올리자, 남십자성 너머로 보름달 휘영청 뜬 칠레의 밤 하늘에 북, 장구 등의 풍물 소리가 퍼져간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밤 이 나라 수도 산티아고를 싸안은 안데스 산맥 기슭의 라카스트리나 공원 야외극장. 한국 창작국악 단체 ‘들소리’가 차린 무대 ‘비나리’에 2000명이 넘는 산티아고 시민들이 대동춤을 추며 추임새를 넣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잽싼 풍물 돌림에 “절씨구” 대신 “워~워~” “브라보”로 청중이 되받았다. 북과 꽹과리, 장구의 합주가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속도를 더하자 관객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을 흔들며 율동을 한다. 안데스 산록에 메아리친 전통 타악 리듬이 마법처럼 그들의 마음을 훑고 고조시켰다.

1월9~15일 산티아고에서 개최된 국제 공연축제 ‘아밀 페스티벌’은 현대적 감각으로 포장한 한국 전통 연희가 세계 어느 청중에게도 보편적인 매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입증한 자리였다. 참가작인 들소리의 비나리를 비롯해 극단 서울공장의 <두 메데아>, 밀물현대무용단의 <아이즈>에 대해 칠레 관객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문화관광부가 지원하는 민간재단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국내 공연단체의 중남미 진출을 위한 첫 지원 사업으로 이 페스티벌을 택한 건 그래서 의미 있는 선택으로 여겨졌다.

앞서 9일 저녁 산티아고 도심의 가톨릭대학 구내에서 열린 서울공장의 <두 메데아> 공연도 또 다른 화제거리였다.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 복수하기 위해 남편의 정부와 아들을 죽인 여인 메데아의 광란을 다룬 그리스 원작의 비극을 극단 대표인 임형택 연출자는 전통 동요, 판소리, 아기의 목소리 등을 강조한 우리 전통 구음과 몸짓으로 표현했다. 그의 이런 실험은 서사적인 대사에 익숙한 현지 관객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전달됐다. 자막 번역이 미숙했는데도, 극이 끝나자 뜨거운 환호와 기립박수가 터져 연출자와 배우들을 놀라게 했다. 임 연출자는 “국내 관객들은 무거운 극 분위기에 눌려 박수도 조심스럽게 치는 분위기였는데, 칠레 관객들은 극의 이미지와 소리에 훨씬 더 민감해 보였다”며 “전통적 요소의 재해석이 오히려 외국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아밀 페스티벌은 1994년 산티아고의 한 기차역에서 다섯 편의 연극을 공연하면서 시작돼 2001년부터 국제 축제로 커졌다.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걸출한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를 배출한 칠레에서 공연예술 장르는 칠레 특유의 문화적 자부심과 결부되어 있다. 8개 나라의 50여 개 무대가 올려진 올해는 한국의 세 작품과 중국의 전통 오페라 무대가 ‘밀레니엄 아시아’란 이름으로 출품되어 아시아권에 대한 관심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 ‘우리는 새로운 무대 언어를 원한다’는 예술감독 카르멘 로메로의 말처럼 사회 비판과 초현실적 상상력이 색다른 무대 세팅 작업으로 어우러진 남미의 실험극과 대중성·실험성의 균형을 맞춘 한국과 중국의 연희 예술들이 소개되어 구색을 맞추었다.

하지만 남미인 특유의 느릿한 시간 관념과 소통 문제 등이 겹쳐 축제 진행은 매끄럽지 못했다. 들소리의 경우 세 차례 공연 장소가 모두 다른데다, 지원 여건도 열악해 음향 연출을 한때 완전히 포기하는 곤욕을 치렀다.

예술경영센터의 우연 국제교류팀장은 “국내 공연예술이 미국, 유럽 중심으로 기획이 편향된 실정을 감안하면, 중남미와의 교류는 다문화적 상상력의 토대를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2009.1.16/산티아고/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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