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한나 칼럼] 이탈리아 식당의 음악 뒤풀이
지난달 한국에서 순회 연주를 가졌다. 고국 무대는 다른 어느 해외 무대보다도 더 좋은 연주를 통해 더 많은 나눔을 갖고 싶게 한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점점 더 깊이 느끼는 것 같다. 더구나 이번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 비발디의 '첼로 협주곡'을 많은 청중에게 처음으로 소개할 수 있어 기뻤다. 7일간 6회 연주를 하는 강행군이었고, 구미와 통영같이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방 연주도 있어 매일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지치기 쉬운 일정이었지만, 함께 연주한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음악 가족이 된 듯 마음의 끈이 생겼다.
매일 같은 연주를 반복하면 연주자는 더 편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다. 매일 청중이 바뀌듯, 연주자도 매일 태어나서 처음 연주하듯, 또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주하듯 올인(all in)하는 연주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반복되는 연주가 아니라 매 순간 즉흥적으로 음악을 작곡하듯 연주해야만 감동을 줄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신경을 바짝 세워야 한다. 무대 위에서 첫 소리를 내는 그 순간 모든 것을 다 잊고 자유롭기 위해선 그만큼 치밀한 준비와 빈틈없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추구하는 해석은 같지만 연주하는 공간에 따라서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 이번에는 더블 베이스 줄을 때리는 소절들이 커다란 연주회장에서 생각보다 빈약하게 전달되기에 '어떻게 하면 이 소리를 더 부각시킬 수 있을까' 하고 단원들과 고민했다. 그 가운데 함께 발을 구르며 더 두드러지게 표현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원전 연주 전문가들인 하프시코드 연주자는 바로크 시대에 자주 보고 들을 수 있었던 방법이라며 찬성했다. 비발디의 매력은 이것이 아닐까? 그가 남긴 악보에는 그만큼 연주자에게 해석할 공간과 상상력을 실천할 가능성을 많이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비발디는 나와 함께 즐겁게 농담을 나누며 맞장구쳐주는 그런 친구 같은 작곡가로 다가온다. 마지막 연주 날에는 곧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에 단원들과 난 더 많은 대화를 하면서 여유 있게 무대 연습을 했다. 하지만 이날 마지막 연주는 무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연주가 끝난 뒤 조촐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우리만의 작은 뒤풀이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단원들이 그동안 버스 안에서 이동할 때며, 또 연주회장에서 연주를 기다리며 나 몰래 준비해온 노래가 있었던 것이다. 바이올린·첼로 등의 반주로 모든 단원이 노래를 했고, 중간에는 단원 개개인의 랩과 댄스도 있었다. 한국에 와서 비발디를 함께 연주하면서 행복했다는 내용, 자신들을 너무나 따뜻하게 반겨줘서 한국인들에게 고맙고, 언제나 매일매일 이렇게 함께 연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마음의 선물이자 감동이었다. 이렇듯 소탈하고 즐겁고 소박하게 일상에서 음악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음악의 본질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기 위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지만, 때로는 음악만이 진정으로 인격과 인격이 동등하게 만날 수 있는 통로라고도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수천의 청중을 위해 연주하든, 아늑한 공간에서 친구를 위해 연주하든, 음악은 연주자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듣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음악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면, 감동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선일보]2008.12.12 2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