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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노닐고 왜가리, 오리 등 철새가 날아든다. 둔치의 코스모스, 벌개미취, 억새풀이 정겹다. 자전거행렬이 시원스럽다. 걷거나 달리는 시민들의 표정이 밝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의정부 도심을 가로지르는 총연장 17㎞, 폭 40~170여m의 중랑천과 부용천의 모습이다.
1950~60년대만해도 중랑천과 부용천은 송사리 잡고 물장구치던 추억의 하천이었다. 70~80년대 산업화 도시화를 거치면서 물고기조차 살 수 없는 죽은 하천이 돼버렸다. 그러던 하천이 시민들이 즐겨찾는 웰빙공간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의정부를 친환경도시로 확 바꿔놓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벌이고 있는 중랑천, 부용천 환경정비사업 결과다. 올해로 시승격 45주년을 맞는 의정부시의 상징이다. 의정부시는 지난 1963년 1월 시로 승격됐다.당시 市는 인천, 수원, 의정부 뿐이었다. 인구 5만7천여명이었지만 경기북부 최대도시였다. 현재 인구는 43만명이다.
하지만 도내 50만~100만에 육박하는 대도시가 수두룩한 것과 비교하면 45년의 성적표치곤 초라하다.경기북부의 고양, 남양주 등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면 더욱 움츠려든다. 한국, 미군부대 등 군부대가 20곳에 이르고 개발제한구역이 70%에 달해 군사도시로서 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던 의정부시가 최근 대단히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내곳곳에 경전철 교각공사가 한창이다. 금오, 녹양지구 등 활발한 택지개발과 광역행정타운조성, 미군공여지 반환에 따른 대학유치 등 교육 및 연구단지조성, 중랑천 등 하천 정비, 상습체증해소와 원할한 교통을 위한 각종 사업 등 고동소리가 힘차다.
오는 2020년 인구 50만 경기북부의 행정, 문화, 교육 등 수부도시로 완성을 위한 야심찬 도전을 하고 있다. 민선시대를 맞고 주한미군공여지 반환과 함께 획기적인 발전적 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중랑천, 부용천하천정비사업은 민선시대가 아니면 꿈도 꿀수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1~2년이면 이동해야 하는 관선시장으로서는 밑그림도 그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시민들은 말한다. 시장들 사이에 두목이라고 불릴 정도로 뱃심있으면서도 정치력있고 마당발인 김문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2004년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재선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민들의 인기를 끌 전시행정에 급급해한다는 부정적시각도 적지 않았다. 시작은 했지만 정치인 출신이 과연 해낼수 있을까 우려도 컸다. 생존에 직면한 태평로 주변 집단화된 노점상들은 목숨을 걸고 버텼다. 시청사 주변은 연일 시위로 살벌했다. LP가스로 위협하고 시청사로 돌맹이가 날아들었다.
김 시장은 이같은 어려움을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이겨냈다. 시쳇말로 으릿비리한 시장이었다면 사업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김 시장은 당시 어려움을 말한다. 사업추진을 위해선 국·도비를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연차적으로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의정부시 예산만으로는 어림없었다. 특유의 친화력을 앞세운 그의 정치인, 언론인 등 다양한 경력이 힘을 발휘했다. 장화와 운동화를 바꿔 신어가면서 아침 저녁으로 현장을 확인했다. 이같은 리더십은 공무원들의 행정역량을 강화시켰다. 김문원과 의정부시공무원들이 한마음이 돼 오늘의 중랑천과 부용천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김시장의 리더십이 탁월하다해도 43만 의정부시민들의 성숙된 시민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답은 명료하다. 김 시장의 정책, 사업추진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내준 시민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사 과정의 각종 불편을 감수하면서 기다리면 의정부시가 자연이 숨쉬는 웰빙공간으로 탈바꿈되고 21세기 친환경도시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불과 10~20년 사이 대도시가 된 도내 지자체가 막대한 개발이익으로 외형적인 성장을 한 것과 달리 의정부시가 가지는 저력이다. 그래서인지 45년만에 받아든 오늘의 성적표는 초라하지만 의정부시의 미래는 여느 도시보다 훨씬 밝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