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고전에서 전위·마당극까지… 가을잔치 ‘풍년’
  • 등록일2008-09-20| 작성자 관리자

<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
고전에서 전위·마당극까지… 가을잔치 ‘풍년’
9, 10월 공연예술축제


가을, 축제의 계절이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6·25로 뿌리째 뽑힌 한국의 축제는 1995년 지방자치제의 실시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해방 후 7개에 불과했던 한국의 축제는 1950년대 10개, 1960년대 33개, 1970년대 39개 등 10년 단위로 두 자릿 수의 새로운 축제가생기다가 1980년대 들어와 123개가 생기는 등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지자제 실시 이후 1990년대 1000개 내외의 축제로 성장했다. 축제가 우후죽순 증가함에 따라 정체성 없는 백화점식, 선심성, 이벤트식 축제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축제는 21세기 들어와 가장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문화복지, 문화민주주의 실천 방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공연예술 축제에 관해 궁금한 것을 10문10답으로 정리했다.


1. 한국의 공연예술축제는 왜 9, 10월에 집중되는가

한국의 축제는 고대 국가시절부터 5월 단오, 10월 상달 등 봄과 가을에 집중됐다. 현대에 이르러 5월이 가족의 달로 가족 중심의 축제가 중심이 된다면 9, 10월은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수준높은 공연예술축제가 홍수를 이룬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축제는 모두 9, 10월에 열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연극과 무용 등 한국의 공연예술제를 통합, 명실공히 최대·최고의 축제를 자랑하는 제8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18일 시작, 10월1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예술의전당 등에서 열린다. 또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잡고 끌어가고 있는 제2회 세계국립극장축제도 국립극장에서 지난 5일 시작, 10월30일까지 계속된다. 이밖에 한국을 대표하는 야외극 축제인 제12회 과천한마당축제가 23일부터 28일까지, 제11회 서울세계무용축제가 10월10일부터 21일 동안 계속된다.

2. 요즘 공연은 연극과 무용, 음악이 구분 안 된다

장르를 넘어 만나는 크로스오버가 세계 예술의 경향이 된지 이미 오래됐다. 연극이 무용을 차용, 음악에 맞춰 몸으로 그리는 작품이 있고, 무용에서 소리치고 대사가 나오는 것은 이제 일반화됐다. 요즘 연극, 무용, 클래식 음악에서 영상없는 작품도 찾기 어렵다. 사람 몸에 영상을 투사하고, 출연자들이 영상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가 하면서 어느 것이 허상이고, 어느 것이 진짜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많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연극과 무용의 장르 구분 자체도 흐릿해졌다. 요즘은 ‘살아있는 구경거리’ 정도의 뜻인 ‘스펙타클 비방(spectacle vivant)’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인문사회과학에서 과거 전문화에서 통합, 통섭 등의 학문경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과 같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극단 우투리(예술감독 김광림)의 ‘이상한 나라 프로젝트2-너도 고백해봐’(∼2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는 섹시한 젊은 여자, 전형적인 아줌마, 고단한 노인, 과도한 공부와 음주·섹스로 지친 젊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움직임과 소리, 음악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나우댄스시어터의 ‘동서양의 음악과 춤의 충돌’(24·2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한국과 아일랜드 양국 전통악기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과 건축가들이 참여한 무대, 영상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다.

3. 체호프 등 이른바 고전 작품들이 맣다

고전을 좀 시니컬하게 정의하면 ‘모두가 읽으라고 권하면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작품은 기본적으로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작품은 고전이 될 수 없다. 그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고 다음 세대 역시 크게 공감, 교훈을 얻은 작품만이 고전이 된다. 한 시대만 반짝하고 다음 시대에는 외면받는 작품은 고전이 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수백년 동안 인기를 끈 고전들은 가장 대중적인 작품들인데 지레 겁을 먹고 멀리하는 경우가 많다. 책으로 읽으면 지루한 고전을, 공연예술을 통해 보면 보다 쉽고 생생하게 고전의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

국립극단의 ‘햄릿’(2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셰익스피어 작), 러시아 국립말리극장의 ‘세 자매’(25∼27일 해오름극장·체호프 작), 러시아 타바코프극단의 ‘바냐 아저씨’(10월3∼5일 아르코예술극장·체호프 작), 독일 뮌헨 캄머슈필레극단의 ‘오셀로’(10월10·11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셰익스피어 작), 노르웨이 페르귄트페스티벌 제작 ‘페르귄트’(10월24∼26일 해오름극장·입센 작) 등이 놓치기 아쉬운 명작 고전작품들이다.

4. 실험, 전위가 뭔가

말 그대로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채, 아니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예상하고 하는 작업을 실험공연이라고 할 수 있고, 전위(前衛)는 전선에 가장 앞에 서서 싸우는 병사,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말한다. 20세기 초 제1차세계대전 이후 무한한 진보를 예상했던 인간이성에 대한 신뢰가 허무하게 무너진 뒤 합리적 세계관에 도전했던 일군의 예술가들이 스스로를 아방가르드라고 지칭하며 기존의 문화예술의 관행과 싸워 현대 예술의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상징적인 사건이 20세기 최고의 흥행사 디아길레프가 스트라빈스키 작곡, 니진스키 안무로 1913년 파리에서 공연한 발레 ‘봄의 제전’이다. 야유와 환호가 뒤섞인 가운데 난장판으로 끝난 이 공연 이후 실험과 전위는 현대예술의 주종을 이뤘다.

마이클 클릭의 ‘으으으음’(28·2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봄의 제전’ 음악을 피아노 음악으로 편곡해 새로 안무한 작품이며, 일본의 세계적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의 한일합작 연극 ‘엘렉트라’(10월10·11일 〃)는 스즈키 방법론으로 훈련된 독특한 양식미로 그리스 비극을 새롭게 해석했다.

5. 마당극은 뭔가

야외극의 한국적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70년대 군사독재 시절 저항가수 김민기씨가 중심이 돼 문화운동 차원에서 시작됐고, 극단 미추의 손진책씨가 마당놀이 형식으로 보다 대중적으로 개발했다. 군사정권이 끝난 뒤 더이상 관객들로부터 해학과 풍자미에 대한 매력이 상실되며 새로운 대안 마련을 모색 중이다.

과천한마당축제는 마당극 전문 연출가인 임진택씨가 1997년 시작해 프랑스 오리악 축제 등 세계적인 야외극 축제와 교류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 축제로 자리잡았다. 2003년부터 임수택씨가 예술감독을 맡아 예술성을 더욱 강화한 야외극, 마당극들이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임 감독은 프랑스 극단 제네릭 파푀의 거리극 ‘야영’(27·28일 과천 중앙로), 역시 프랑스 극단 엑스니힐로의 거리무용 ‘도시의 여정’(〃), 우크라이나 극단 보크렌시아의 야외극 ‘벚꽃동산’(25~27일 과천정부청사 앞 주행사장)을 꼭 봐야 할 작품으로 추천했다.

6. 과감하게 벗는 작품이 많다. 외설과 예술의 차이는

허리 위가 떨리면 예술, 아래가 떨리면 외설이라는 농담이 있다. 시대의 도덕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그래도 구별이 어렵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전설적인 대법관 워런은 “보면 안다”고 판결했을까. 물질문명이 정신문화를 지배하고, 영상을 비롯한 첨단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며 인간 소외 현상이 심화하면서 현대 예술은 극한의 표현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일체의 허례허식, 위선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진실 전부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온몸을 던진다.

마이클 클릭의 ‘으으으음’과 현대무용가 김윤정씨의 ‘베케트의 방’(25·26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등의 작품에서 도발적인 몸을 만나 워런 대법관의 판결대로 예술인지, 외설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페르귄트’에서도 풍만한 북구여인의 몸매를 잠깐 만날 수 있다.

7. 온 가족이 함께 볼 만한 작품은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에 참가한 프랑스 오데옹국립극장의 ‘소녀, 악마 그리고 풍차’와 ‘생명수’(10월9~11일 달오름극장)이다. 그림형제의 동화를 바탕으로 오데옹 극장장 올리비에 피가 각색 연출했다. 피는 매년 1작품 이상 가족극을 만들고 있다. ‘소녀…’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맺은 잘못된 계약으로 자신의 딸을 악마에게 내줘야 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고, ‘생명수’는 세 명의 청년이 병든 아버지의 치료약을 찾기 위해 세상을 여행하는 내용이다. 우스꽝스럽고 익살맞은 노래와 화려한 무대로 꾸며진 이 작품들은 풍자와 유머, 독특한 연출로 정통 프랑스극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과천한마당축제에서 열리는 해외작품 9편과 국내작품 22개 모두도 온 가족이 즐기기에 적당한 프로그램이다. 이 작품들은 특히 모두 무료라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8. 뮤지컬은 왜 포함되지 않았나

뮤지컬축제가 없지는 않다. 19일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제4회 전국대학뮤지컬페스티벌이 시작, 30일까지 계속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고부의 끈’을 비롯해 9개 대학의 작품이 참여했다. 그러나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상업적인 작품이다. 하루 이틀 공연하고 끝내서는 절대 수지가 맞지 않는다. 대체로 6개월 이상 공연해야 손익분기점에 이른다. 9, 10월에 주목되는 작품은 에이콤의 ‘명성황후’(10월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PMC의 ‘대장금’(30일까지 경희궁 숭정전), 설앤컴퍼니의 ‘캣츠’(12월31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극장)다.

9. 입장료는 왜 그렇게 비싼가

영화는 만들 때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일단 만들어만 놓고 보면 무한 복제가 가능해 유통비가 싸진다. 디지털 카메라, 특수효과 등 기술의 발달이 제작비용을 크게 줄이기도 한다. 그러나 공연예술의 경우 공연예술이 처음 탄생한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만드는 방법이나 공연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미국의 경제학자 보멀은 “시간을 압축할 수 없는 공연예술은 필연적으로 재정적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보멀의 법칙’으로 각국이 공연예술의 공공부조를 필수로 하는 이론적 바탕이 됐다.

유명 공연은 몇 십만원씩 하며 일반인이 넘보기 어려운 가격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축제는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의 부조가 많아 비교적 싼 가격으로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10. 공연예술축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즐기는 방법은

수영을 배우려면 어떻게 하나. 책으로 아무리 봐야 소용이 없다. 물에 빠져야 한다. 신문의 프리뷰, 리뷰 가이드 기사를 보고, 이를 인터넷으로 확인해 찾아가야 한다. 예매가 필요한 화제작은 예매를 하고 무료인 공연은 주변을 헤매며 마음내키는 대로 참여해야 한다.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트는 “21세기에는 순수공연예술 시장이 스포츠 시장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직접적 인간관계가 점점 줄어만 가는 상황에서 인간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감동적이고 직접적인 만남을 찾을 수 있는 매개가 바로 공연예술이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정보와 영상의 홍수 속에서 지루한 것은 잠시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리모컨에서 벗어나 인간과 예술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공연예술은 분명 21세기를 사는 데 필수 영양소를 제공한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 몸과 마음, 지성으로 교류하면 감성지수는 물론 창의력을 높여주고, 고전에 바탕한 폭넓은 인간의 이해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문화일보]2008-09-20/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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