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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아버지 역을 연기하지 않아도 무대 위에 서면 그대로 ‘아버지’인 배우가 있다.
배우 전무송(67)이 그렇다. 배우 김혜자와 고두심이 ‘한국의 어머니상’을 대표하는 얼굴이듯 그는 무대, 스크린, 브라운관에서 ‘한국의 아버지상’을 거듭 그려왔다.
집에서 쫓겨나 유랑하듯 평생을 보낸 코미디 배우(연극 ‘꿈꿔서 미안해’), 장모의 부고를 전하러 온 처갓집 운전사(연극 ‘상당한 가족’) 등 다양한 배역을 연기해도 밑바탕에 깔린 것은 ‘아버지’의 이미지였다.
그런 전씨가 본격적으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이 지난해 말부터 안산 수원 등 지방 도시를 순회 중이다. 오는 13일에는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18~19일에는 간만에 상경(上京)해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다.
지난 8일 전씨가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인 수원시 경기도립극단 사무실을 찾아 ‘역대 최고의 윌리(‘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라 불리는 그를 만났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일까. 윌리는 조금 수척한 모습이었다.
▶예전엔 아버지 생각, 지금은 자식 생각하며 연기
사람들은 ‘세일즈맨의 죽음’을 전무송의 대표작으로 손꼽지만 그는 “이번이 고작 세 번째 출연”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의 연기가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1984년에 처음으로 ‘윌리’ 역을 맡았고, 2006년에 남산 드라마센터 개관 43주년과 동랑 유치진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두 번째 윌리를 연기했죠.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한국적으로 윤색했어요. ‘윌리 로먼’이 아니라 한국 이름 ‘노만수’, 배경도 우리나라입니다.”
아서 밀러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평생을 외판원으로 살아간 어느 가장의 이야기다. 두 아들과 다정한 아내를 둔 지극히 평범한 남자가 전원생활의 꿈을 접고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영업일을 시작했지만 60대가 되도록 그저 그런 삶을 산다. 가족은 자신의 목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식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쳐 실망감을 자아낸다. 오랜 세월 근무한 회사에서도 해고되자 주인공은 그간의 신념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자동차를 폭주해 자살한다. 가족에게 사망보험금이라도 남기고자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산업사회의 비정함을 폭로한 사회극으로, 자기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물질적인 성공만을 좇는 현대인의 비극을 그렸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전씨는 14년 전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기할 때는 윌리의 모습에 아버지를 투영했고, 지금은 자신을 대입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당시 인천에서 명문 중학교에 입학한 제게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법관이 되길 바라셨어요. 그러나 저는 집안형편이 어려우니 돈을 벌겠다며 공업학교에 진학했죠. 그때 막 한국 공업이 부흥을 예고하던 시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지자 몹시 실망하셨죠. 나도 자식이 생기고 보니 그들을 바라보는 제 모습을 반영하게 되더군요.”
전씨는 극 중 배역인 윌리와 비슷한 나이다. 평생 연극의 꿈을 좇아 가족을 고행길로 이끌었다는 점도 닮았다. 그는 “이 세상 아버지들이 다 똑같지 않겠느냐”며 “원작이 가진 사회비판적 성격보다 보편적인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버지란 존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길이 열려 있는 곳은 내가 갈 곳 아냐
전씨는 2년 전부터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배우로서도 꾸준히 무대에 서지만, 거창국제연극제 조직위원장을 맡는 등 지방 연극 활성화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연극이 흥행하기 어려운 지방 중소 도시를 찾아다니며 공연하고, 한국 고전문학을 연극으로 각색해 청소년 대상의 상설 무대를 여는 것도 그의 몫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야죠. 지방에도 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극인이 많은데 사정이 많이 어려워요. 서울이야 극장도 많고 한 번 망해도 재기할 수 있지만, 여기는 극장도 없는 데다 한 번 실패하면 길이 없어요.”
전씨는 “그렇기 때문에 도립극단을 이끄는 내 임무가 막중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소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처한 고행길일지라도 되돌아가고 싶을 때는 없었을까.
“가난함, 배고픔…. 나는 이런 게 그냥 연극의 숙명이다 생각했어요. 뭐든 기초예술, 기초학문은 돈 버는 거랑 거리가 있잖아요. TV나 영화, 뮤지컬이 없을 때도 연극은 악극의 인기에 밀렸어요. 하지만 연극은 모든 연기의 밑바탕이 되는 거니까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소수가 이끌고 가는 겁니다. 동랑 유치진 선생이 드라마센터에서 강의하실 때 날 불러놓고 ‘민들레 홀씨처럼 되어 연극을 전파하고 발전시키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숙제 중
고희를 바라보는 전씨는 “환갑을 넘긴 이후의 인생은 덤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지금 연기를 하는 것도 연기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누군가에게 혼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혼이 들어가는 시점이 있어요. 그러면 보는 이들이 생명력을 얻게 되죠.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 벽화가 소녀를 살린 것 같은 그런 연기 말입니다. 근데 아직도 난 그게 잘 안 돼요.(웃음) 스승님이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 되라고 하셨는데, 내가 훌륭한 배우가 못된 걸 보면 아직 인간이 덜됐나 봐요. 죽기 전까지 풀어야 할 숙제예요.”
그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윌리처럼 자신도 소극장을 하나 짓고 싶은 소망을 못 이뤘지만, 남은 인생에 꼭 지어야겠다고 욕심내기보다는 후배들이 해줄 거라고 기대한다.
“내가 연극을 한 지 46년이 되니까 한국 신극 역사 100년에서 절반은 산 셈인데, 그때보다 참 많이 좋아졌잖아요. 젊은 연극인 중에 훌륭한 이들도 많고. 앞으로 더 많이 기대해봐도 되겠어요.”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사진=박해묵(mook@heraldm.com)
[헤럴드경제]2008.07.10.14:51/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